‘화평한 자’가 아닌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뜻은…

픽사베이




팔복의 일곱 번째 복은 예수님의 입술을 통해 이렇게 선포됐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여기서 ‘화평’이란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샬롬은 ‘갈등이 없다’ ‘싸움이 없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더 심오한 의미가 있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건강함과 온전함의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온전히 경험하는 삶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은 화평(평화)을 소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고 ‘화평케 하는 자’ 즉 평화를 이루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점입니다. 인간의 시기 질투 분노 두려움 염려는 마음의 평안을 무너뜨립니다.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트리히 본회퍼는 “용서는 모든 평화의 유일한 기반”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용서란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의 무도한 행위를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놓아주고 현재를 치유하기 위해 내가 내린 선택입니다.

용서는 우리가 아닌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일단 용서하기로 선택했다면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용서를 경험하면 내 안의 닫혀 있는 자유의 문이 열리며 내면의 깊은 곳으로부터 평안과 관용, 자비가 샘솟듯이 밀려올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거짓말처럼 이해되고 용서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18~19절에서 말했듯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이미 우리 죄를 용서하셨고, 그 용서를 우리에게 거저 베푸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으면 그분의 용서를 심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도록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화평케 하신 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손을 잡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아무런 평화가 없었지만, 평화를 낳았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이 자신의 죄와 실수 그리고 서로에 대한 증오와 잘못을 깨닫고 이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바로잡지 않는다면 화해할 수 없습니다. 화평은 그저 전쟁을 그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화평은 원수를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는 ‘의’를 낳는 것입니다. 평화는 악이 활개 치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화평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평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끼리 화평하게 도와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맞서야 할 것은 우리의 내적 죄입니다. 우리는 기꺼이 내면의 죄와 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셨듯이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을 담대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참된 평안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려움과 절망, 좌절 속에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신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참된 평화의 의미를 체험하고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복음전파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상처를 받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로부터도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의적이든 아니든 우리가 상처받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은 분노입니다. 마음이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이 분노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정신 건강뿐 아니라 육체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신뢰할 만한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아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특히 글쓰기는 감정을 쏟아내는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 질문에 대답하면서 마음에 입혀졌던 ‘분노의 갑옷’을 벗어버리고 어두운 감정의 터널을 걸어 나오십시오.

1. 분노의 대상이 나의 감정을 조정하지 않도록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먼저 상처받았던 한 사건을 떠올려 보십시오.

2. 분노가 치밀면 일단 한 걸음 물러서야 합니다. 90초간 심호흡을 한 후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지’하고 잠깐 생각해 보세요. 먼저 분노의 이유를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3. 자신의 분노를 분석한 후 그 대상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십시오. 그리고 적당한 기회를 만들어 상대에게 말하십시오. 단, 주어는 ‘너’가 아니라 ‘나’여야 합니다. “너 때문에 내가 짜증 나 죽겠어”가 아니라 “나는 너의 그런 행동에 화가 난다”고 말하는 편이 좋습니다.

4.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 다른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즐거웠던 일, 좋아하는 사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면 효과적입니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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