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만 내면 붙는 신대원… ‘예비 목자’ 자질 검증 못한다

국민일보DB


“모 신학대학원에 있을 때 일입니다. 한 학생의 행동이 너무 독특해 알아보니 정신 질환이 있더군요. 쉬운 병은 아니었습니다. 입학할 때는 그런 사실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습니다. 그해 지원자 전원이 합격했거든요.”

신학대 교수로 활동하다 정년 은퇴한 A교수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30일 서울 종로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그 학생은 이미 목사 안수까지 받았다고 들었다”며 “지금 신학대학원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목회자 양성을 위한 교육 기관인 신학대학원이 학령인구 감소와 목회자·교회 신뢰도 하락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자질이 부족한 학생이 유입되고 목사 안수까지 받고 있어 교단의 미래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격이 안 되는 목회자가 양산되면 교인들이 피해를 보는 건 물론이고, 그대로 방치하면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 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어 해마다 지원자 중 대부분을 선발하는 병폐가 반복되고 있다.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7개신학대학교구조조정위원회에 보고된 교단 산하 신학대학원 현황 보고서에는 이런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21년 신대원 신입생 규모를 보면 장로회신학대 서울장신대 한일장신대를 제외한 나머지 신대원은 정원을 충족하지 못했다. 7개 신대원 정원 648명 중 572명만 선발해 충원율은 88.2%에 그쳤다. 충청권의 한 신대원은 정원의 절반만 충원했을 정도다. 이런 현상은 예장통합을 비롯해 대부분의 교단 산하 신대원에서 고르게 나타난다.

경쟁률이 떨어지면서 지원만 하면 합격할 가능성은 커진다. 이는 입학 사정을 통해 신학 수업을 받을 자격을 지닌 학생을 걸러내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걸 의미한다.

경남의 한 신대원 B교수는 “억지로 입학 정원을 채우려고 문턱을 한없이 낮추고 있지만, 정원을 모두 채우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결국 원서만 쓰면 합격하는 일이 일상화됐고 이는 신학 교육의 부실과 자질 부족 목사 후보생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어진다. 학자 양심에 깊은 가책을 느낀다”고 말했다.

국내 신학대학원 전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전국신학대학협의회(KAATS)에 가입한 대학이 40개인 걸 고려해 최소 그 정도의 신학대학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 학교에서 50명씩 졸업한다면 해마다 2000명 가까운 목사 후보생이 배출되는 셈이다. KAATS 미가입 신대원 졸업생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목사 후보생이 이토록 많다 보니 결국 현장에서는 임지 부족, 무사역 목사 양산 등의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예장통합 산하 한 신학대학원 관계자 C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장마 때 마실 물이 없다는 비유를 들고 싶다”면서 “요즘 과연 목회자 자질을 충분히 갖춘 이들이 목회 현장에 나오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교단별로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고육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크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는 교단 산하 감리교신학대와 협성대, 목원대 신학대학원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기감은 2024년 2월까지 ‘웨슬리 신학대학원’(가칭)을 ‘통합 또는 설립’하기로 했다. 웨슬리 신대원을 신설할 경우 ‘선 설립, 후 통합’ 수순을 밟는다는 게 기감의 구상이다.

예장통합은 2018년부터 3년 동안 해마다 교단 산하 신학대학원 입학 정원을 4%씩 줄였다. 이 조치는 교계에서 파격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교단 내부에서는 ‘3년 12% 감축안’을 한 번 더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노영상 예장통합 7개신학대학교구조조정위원회 전문위원은 “현재 7개 신대원 입학 정원이 현실과 다르게 지나치게 많다는 데 공감대가 있고 점진적인 입학 정원 감축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며 “내부에서 다시 점진적 정원 감축을 시도하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밝혔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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