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문답 외우게 하신 부모님의 엄격한 교육이 내 신앙의 뿌리”

인요한(오른쪽)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장진현
 
사진=장진현


인요한(63)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은 1895년 한국에 첫발을 디뎠던 유진 벨 선교사의 후손이다. 벨 선교사는 인 소장의 진외증조부(친할머니의 아버지)로 전라도에 터를 잡았다. 벨에서 시작된 한국 선교는 사위 윌리엄 린튼(1891~1960)과 그의 아들 휴 린턴(1926~1984)으로 이어졌다. 인 소장은 벨 선교사 가문의 4대손으로 여전히 한국인과 벗하며 살고 있다. 127년 동안 한국 선교의 대가를 이룬 가문은 한남대를 비롯한 교육기관을 설립했으며 순천 기독결핵진료소를 통해 죽어가는 생명을 살렸다. 국민일보 크리스천리더스포럼(CLF)을 이끄는 김영훈(70·덕수교회 장로) 대성그룹 회장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인 소장을 만나 그의 삶과 신앙을 들어봤다.

대담=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김 회장=선교사 집안의 4대손이다. 자라면서 집안에서 가장 강조한 건 뭔가.

△인 소장=선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나는 선교사가 아니다. 의사로 사는 신앙인이다. 2021년 특별 귀화했는데 내가 한국인에게 뭔가를 준다기보다 대한민국으로부터 받은 게 훨씬 많다. 아버지는 늘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하지만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전주예수병원에서 태어난 뒤 줄곧 순천에서 자랐다. 한국도 가난했지만, 그중에서도 전라도는 더 궁핍했다. 부모님은 이런 말씀도 자주 하셨다. “한국이 가난하다고 한국과 이 나라 사람들을 낮게 봐서는 절대 안 된다. 사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우리와 한국인은 똑같다. 다를 게 조금도 없다.” 이 말이 성장기 내내 날 이끌었다. 지금까지 한국에 사는 동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김 회장=목회자 집안에서 자라면서 방황을 한 적도 있나.

△인 소장=당연히 있다. 젊었을 때는 불교 서적도 많이 읽었다. 해군 장교로 인천상륙작전에도 참가하셨던 아버지는 엄하셨다. 게다가 군산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굉장히 유교적이셔서 뭐든 원칙대로 해야 했고 하지 않으면 벌하셨다.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 107개를 암기하게 하신 게 기억난다. 그런 아버지가 어릴 때는 미웠다. 아버지에게 혼나는 날이면 왕시루봉에 올라가 “아버지 미워서 교회 안 다닌다”고 외친 것도 여러 번이었다. 철이 들고 부모님의 사역이 얼마나 훌륭한지 깨닫게 됐고 그런 과정을 거쳐 내 신앙을 가졌다. 엄한 아버지 아래에서 잡초처럼 자랐다. 어딜 가더라도 쉽게 적응하는 건 이 영향이 크다. 목사나 선교사 자녀라고 해서 아버지의 길을 따라 성직자가 돼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말라. 이 부담을 벗어야 자기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 아버지는 너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지만 95세 되신 어머니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살고 계신다. 어머니는 당신 장례 예식 순서 맡을 분들까지 일일이 정해 주셨고 화장하지 말고 아버지 곁에 묻어 달라 당부하셨다.

△김 회장=형이 인세반 유진벨재단 이사장이다. 다른 형제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인 소장=북한 결핵 퇴치를 위해 유진벨 선교사의 후손들이 유진벨재단을 만들었고 형님이 이끌고 계신다. 또 다른 형인 제임스 린튼은 북한에 우물을 파는 단체인 ‘웰스프링’을 이끌고 있다. 깨끗한 물이 나오는 우물 1만 개를 파는 게 목표라고 한다. 미국에 사시는 누님은 낙태 반대 운동하면서 자녀를 11명이나 낳았고 미국 금융계에서 일하는 형님도 계신다.

△김 회장=한국형 구급차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 귀화했다.

△인 소장=1984년 차에 자재를 싣고 이동하시던 아버지를 음주 운전하던 버스 기사가 들이받은 뒤 큰 부상을 입은 아버지를 순천의료원으로 옮기던 중 택시 안에서 돌아가셨다. 지금의 나보다 당시 아버지가 훨씬 젊었다. 충격이 컸다. 시간이 지나 의사가 됐고 아버지처럼 이송 중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을 줄이고 싶어 구급차 연구에 몰두했다. 처음부터 한국 지형에 맞는 구급차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이렇게 만든 한국형 구급차를 소방서는 물론이고 북한에까지 여러 대 기증했다. 이 차를 통해 북한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집안이 순천에서 결핵 퇴치 운동을 한 걸 북한 당국에 알렸고 이를 계기로 유진벨재단 사역이 북한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김 회장=결핵 퇴치를 위해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들었다.

△인 소장=그렇다. 북한에도 여전히 환자가 많고 심지어 한국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결핵 환자가 가장 많다. 탈북자 결핵 관리도 중요한 과제다. 통일을 위해서도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전체의 결핵 관리가 상당히 중요하다. 영양을 개선하는 게 결핵 퇴치의 첩경이다. 결핵은 전염성이 높은 질병으로 1명이 최대 15명까지 전염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 지난 100년 동안 전쟁에서 죽은 사람보다 결핵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결핵 퇴치 운동을 통해 ‘건강한 통일’을 하는 게 유진벨재단의 목표다.

△김 회장=우리나라 의료 수준이 세계적이지 않나.

△인 소장=하나님이 머리 좋은 사람에게 손재주를 안 주시지만 한국 의사들은 예외인 것 같다. 쇠젓가락을 쓰는 게 손재주가 좋은 이유라고 보는 해외 의사들이 많다. 장비도 최신이다. 시술이나 수술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 의료 수준을 따라갈 나라가 많지 않다. 앞으로 전 세계에 한국 의료가 얼마나 훌륭한지 홍보하는 일도 하고 싶다. 불치병을 한국에 와서 치료했다는 소식이 세계로 전해진다면 결국 한국은 생명을 살리는 나라가 되는 셈이다. 결핵 진료소를 통해 생명을 살리셨던 아버지가 지금 이런 모습을 보신다면 얼마나 기쁘실까 생각해 본다. 내가 의사가 되기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그립다.

△김 회장=한국교회도 받은 사랑을 여러 나라와 나눠야 할 것 같다.

△인 소장=맞다. 다른 국가를 괴롭힌 일이 없는 한국은 선교사를 파송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쉬지 않고 일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형편에 있는 나라 국민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복음이 희망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교회들도 더욱 낮아져야 한다. 소외된 사람을 돌보고 외국인 근로자와 탈북자를 품어야 한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던 예수님처럼 교회도 한없이 낮아져야 희망이 생긴다. 약간 손해 보더라도 빛과 소금이 되라는 명령을 따르는 길이라면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기독교는 희생을 딛고 성장하는 종교가 아닌가.

△김 회장=그렇다. 양적으로 성장한 교회가 이제는 질적으로 성숙할 때다.

△인 소장=질적으로 성숙해 한국 사회와 세계에 이바지해야 한다. 물론 요즘 들어 교회가 모순된 모습을 자주 보여 안타깝다. 하지만 여전히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헌신하는 목사와 선교사들이 많다. 이런 분들의 사역이 많이 알려져 어둠에 빠진 세상을 밝은 빛으로 비춰야 한다. 일제강점기 탄압받던 시절의 신앙을 회복해야 미래가 있다. 그러면 전 세계에서 1위 신앙 국가로 성숙할 것이라 믿는다.

△김 회장=한국교회가 규모의 성장만을 추구하다 보면 복음의 능력을 잃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자성하는 목소리가 많다.

△인 소장=교회가 다음세대를 키우기 위해 신앙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소극적 태도나 무관심으로는 아무도 길러낼 수 없다. 비단 교회교육뿐 아니라 교육의 모든 영역에 복음을 심어야 한다. 유대인을 보라.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고 키운다. 선교사들이 100여년 전부터 심은 복음적 교육의 씨앗을 다시 심어야 할 때다. 연세대의 모토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다. 복음이 진리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제대로 된 복음을 심으면 미래를 이끌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다. 진리를 심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린 것도 이런 도전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김 회장=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인 소장=며칠 전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전쟁에 빠진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했다. 기도도 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수백만 명의 피란민을 돌보기 위한 재정이다. 한국 교회가 가진 걸 당장 나눠야 한다. 개인도 좋고 단체도 좋고 당장 이들을 돕기 위해 헌금해야 한다. 불행한 이들을 위로하는 게 신앙인의 사명 아닌가. 바로 지금 교회가 할 일이 있다는 걸 잊지 말고 돕자.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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