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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T세포 뽑아놓고… 건보 적용 기다리는 시한부 혈액암 환자들

게티이미지



 
킴리아 완성 제품 모습.


주사 한 번에 수억원 ‘마지막 희망’
지난달 심평원 약평위 고비 넘어
건보공단-제약사 줄다리기에 애타

한 번 주사를 맞는데 수억원이 드는 항암신약 ‘킴리아’에 대한 건강보험이 언제 적용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기존 치료제가 더 이상 안 듣거나 여러번 재발한 말기 혈액암 환자들은 생사에 시간을 다투는 상황이라 하루라도 빨리 급여화가 이뤄져 경제적 부담을 던 상태에서 치료에 대한 희망의 끈을 이어가길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지난달 1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에서 ‘킴리아의 급여 적정성이 있다’고 판단한 이후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가 약가 협상에 나섰지만 좀처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약평위 이후 조만간 급여화가 될 것이란 기대가 생겼지만 이후 협상 난항에 환자와 가족들의 ‘희망 고문’이 계속되는 중이다. 일부 환자는 킴리아 제조를 위해 자신의 면역세포(T세포)를 뽑아 놓거나 미국으로 보내 치료제를 만들고도 건보 적용 시점을 기다리며 투여를 미루는 경우도 있다.
 
넘어야 할 산 ‘약가 협상’

킴리아는 최대 6개월 시한부 삶을 사는 말기 혈액암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1인 맞춤형 항암제인 ‘카티(CAR-T)치료제’다. 글로벌제약사 노바티스가 2017년 개발해 국내에는 지난해 3월 ‘1호 첨단바이오의약품’으로 승인받았다. 기존 항암제와 제조 방식 및 작동 메커니즘이 다르다. 환자 자신의 혈액에서 뽑은 T세포에 암세포를 인지하는 유전자(CAR)를 발현시키고 이를 배양해 환자 몸에 다시 투입함으로써 암세포를 파괴토록 하는 원리다. 일반 항암제가 모든 환자들에게 보편적으로 투여되는 것과 달리 환자 혈액에서 T세포 채취 및 동결→CAR 유전자 발현(한국 환자의 경우 미국으로 세포를 보내 제조)→세포 배양→품질 관리→환자에 재주입 등의 과정을 거쳐 개인 맞춤형으로 만들어진다. 모든 과정에 대개 3~4주 걸린다.

치료 대상은 성인 미만성 거대B세포 림프종(DLBCL)과 25세 미만 B세포 급성림프구성 백혈병(ALL) 환자들이다. 둘 다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보이는 불응성·재발 환자의 경우 기대 여명이 3~6개월에 불과하다. 해외 임상시험에서 이런 환자 대상으로 킴리아의 효과가 입증되면서 ‘기적의 항암제’로 불렸고 한국 내 환자와 가족들 사이에서도 기대감이 높았다. 국내에선 DLBCL이 연간 250~300명, ALL은 50명 안팎으로 발생한다.

문제는 엄청난 치료 비용이다. 평생 단 한번의 주사에 3억~5억여원(일본·미국 기준)을 지불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국내 승인 이후 1년 가까이 조속한 건보 적용의 목소리가 커졌고 숱한 논의 끝에 최근 심평원 약평위의 고비까지 넘은 것이다. 앞으로 남은 절차는 약가 협상(60일내)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의결 및 약가 고시(30일내)다.

특히 넘어야 할 산이 약가 협상인데, 지난달 말 시작된 건보공단과 제약사간 협상은 큰 진척이 없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환자들이 처한 상황을 감안해 다른 신약 약가 협상 보다 더 자주 만나고 있다. 환자의 보장성 확보, 건보 재정 등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국내 첫 초고가 원샷(one shot) 치료제라는 상징성 때문에 향후 비슷한 신약이 줄줄이 대기 중인 상황에서 첫 단추를 잘 채우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제약사는 “양측이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충분히 돼 있다”면서도 정부의 급여화 조건인 ‘총액 제한 및 성과 기반 지불 유형의 위험 분담제’(정해진 총액 이상 치료비 청구 시 초과 금액이나 환자에게 효과 없을 시 해당 비용을 제약사가 환급하는 제도)에 대해 부담스러운 입장을 드러냈다. 제약사 관계자는 “대량 생산이 가능한 다른 항암제와 달리 킴리아는 환자 1명을 위한 개인 맞춤 치료제이기 때문에 제조를 위해 전문 인력과 의료기관의 훈련 등 고도화되고 전문화된 과정을 필요로 한다”며 “첨단 바이오의약품에 맞는 협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급여화 기다리다 악화 우려

환자와 가족들은 애가 탈 수 밖에 없다. 곧 건보 적용이 될 것이란 기대 속에 급여화 이후 치료받으려 무작정 기다리는 사례도 있다. 2013년 미만성거대B세포림프종을 진단받고 치료받아 온 양모(43)씨는 지난해 12월 8년만에 두 번째 재발을 겪었다. 암이 뇌로 퍼져 섬망(헛소리) 증세를 보이고 거동을 하지 못해 결국 의식 없는 채로 응급실로 실려왔다. 의료진은 “두 달 정도 남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사실상 시한부를 선고했다. 하지만 최근 킴리아의 건보 적용 가능성이 높아지자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양씨의 형(48)은 “이달 초 병원에서 동생의 T세포를 채취해 미국으로 보낸 상태”라며 “급여화가 빨리 결정돼 다음 달에라도 킴리아를 투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현재 가격 협상이나 이후 행정 절차 등을 감안하면 힘들 것 같다. 동생이 한 두달 더 버텨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애타했다.

양씨 같은 사례는 킴리아 치료센터로 지정된 의료기관에 꽤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고영일 교수는 “현재 킴리아 치료를 고려 중인 10여명 중 70대 림프종 환자 1명은 T세포를 채취해 미국에 제조를 의뢰했고 돌려받는 시점을 연기한 상태다. 급여화 가능성이 있어 환자가 기다려 보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70대 2명은 3월 초 T세포 채취를 예정하고 있으며 이들도 4월에는 급여화될 걸로 믿고 있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원석 교수도 “약평위 급여 적정성 평가 이후 2명의 림프종 환자가 T세포를 뽑아 놓고 대기 중이다. 이들 중 1명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급여화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킴리아에 건보가 적용되면 암 환자 산정특례로 약값의 5%만 본인 부담하면 되며, 그나마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라 연간 최대 590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환자와 가족들의 절박한 바람에도 이달 내 약가 협상이 이뤄지고 건정심 의결을 거쳐 다음 달 1일부터 보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사실상 물건너간 상태다.

이은영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처장은 “25일 열리는 2월 건정심 회의에는 킴리아 안건이 올라오지 않은 걸로 안다”면서 “만일 약가 협상 기한인 다음 달 말을 넘기면 적극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약가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한시가 급한 환자들이 급여화를 기다리다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악화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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