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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블루 시그널] 코로나 패러독스를 꿈꾼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인간의 능력으로 쌓아 올린 문명과 문화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줬다. 이어령 교수가 ‘메멘토 모리’라는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기독교에서 제일 큰 죄악은 휴브리스(Hubris), 즉 인간의 오만인데 코로나를 통해 이를 자연스레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위대하고 사람과의 만남과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됐다.

이런 때에 우리는 김누리(중앙대) 교수가 표현한 대로 ‘재난 유토피아’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재난 유토피아라는 말은 우리가 재난 속에 있을수록 성숙한 시민(교인) 의식을 가짐으로써 현재의 불확실성을 신뢰와 믿음으로 회복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재난 이후에 오히려 더 성숙한 의식을 가지고 생명의 소중함과 공동체의 안전을 지켜가는 새로운 사회 질서와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재난 유토피아를 넘어 이 교수의 주장대로 코로나 패러독스를 이루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모습은 왕관이고 예수님과 천사들 뒤에 원처럼 비치는 원광이다. 그런데 그 왕관에 자유의 여신상 머리 모양처럼 뾰족한 가시가 달려 있다. 존귀하고 성스러운 왕관에 가시가 달려 있고 그것이 인간을 괴롭히는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 가시 앞에 인간은 누구나 겸손해야 하고 오만을 버려야 한다.

교회도 매너리즘과 화석화된 신앙을 깨버리고 다시 초대교회의 원형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코로나 패러독스를 이루게 될 것이다. 역사를 보면 대역병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인구도 불어나고 그 이전보다 번영을 이뤘다. 페스트는 유럽 인구 3분의 1의 생명을 빼앗아간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특별히 런던 같은 경우는 인구 3분의 1이 희생당한 1665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화재가 발생했다.

그런 대재앙이 지나고 훗날 영국은 팍스 브리태니카를 이루며 전 세계를 지배하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이루었다. 런던만이 아니었다. 페스트 재앙의 종착지였던 파리 역시 페스트가 지나간 뒤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발전해 유럽의 문화 중심지로 화려한 꽃을 이루었다. 이것이 바로 팬데믹의 패러독스다(‘메멘토 모리’, p19).

이 교수에 의하면 코로나 패러독스의 마지막 희망 역시 기독교다. 오늘날 사회로부터 불신을 받고 쇠퇴해 가는 기독교에 다시 한번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고, 인간의 오만과 그로 인한 재앙을 극복했던 힘을 되살려낸다면 그것이 희망이요, 코로나 패러독스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첩경이라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크리스채너티(Christianity)가 새롭게 해석되고 그 본질이 회복되기만 한다면 기독교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 역시 예배 지킴과 회복을 위해 지난 1년 동안 온 힘을 다해 정부와 싸울 때도 있었지만, 극한 상황에서는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 예배 인원의 비율을 정하기도 했다.

얼마 전 어느 일간지와 인터뷰를 할 때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오로지 현장 예배만을 주장하는 분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분들의 공격 때문에 정부와 협상하는 것도 전략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생각이 다르고 방법이 달라도 우리는 하나다. 예배의 자유와 숭고함을 지켜내며 교회를 세우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목적이다. 종교적 오만을 버리고 진정한 크리스채너티를 회복하며 초대교회의 원형을 추구해 나가자. 그럴 때 아무리 매서운 겨울도 새봄을 이길 수 없듯이 우리는 대지에 피어나는 생명의 찬가와 부흥의 합창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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