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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칼럼] 코로나 고비마다 준비 부족 드러낸 정부



정부 주도에서 개인 책임으로
방역 대전환… 이렇게 큰 변화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했어야

초기 K방역 성과에 취했나
백신확보·위드코로나·방역
패스·오미크론에 대응 늦어

재택치료가 재택방치 안 되게
모든 환자 국가 책임 아래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너무 빨리 늘고 있다. 더 이상 정부가 그 많은 재택치료자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이제부턴 고령층·기저질환자 등을 빼고는 각자 알아서 관리하라. 정부가 지난 7일 내놓은 새로운 방역지침의 핵심이다. 그동안은 모든 확진자가 정부의 관리 시스템 안에 있었다.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고, 아프다면 병원으로 옮기고 약 주고 치료해 줬다. 이제는 아니다. 스스로 몸 상태를 살펴야 한다.

정부 주도 방역에서 개인의 책임으로 넘어가는 대전환이다. 선제적으로 확진자를 관리하는 3T, 검사(Test)·추적(Trace)·치료(Treat)가 핵심인 K방역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의 방역·의료체계 전환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국민은 당황스럽다. 각자도생으로 가는 이렇게 큰 변화라면 미리 국민과 소통하며 충분히 설명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자가격리 앱이 사라지면 확진자가 격리 중 이동할 경우 감시할 방법도 없다. 그동안 K방역을 지탱해온 것은 국민의 희생과 동참이었는데, 이제는 여기에 국민의 양심이 더해졌다.

정부는 왜 떠밀리듯 갑자기 방역 지침을 바꿨는가. 오미크론 변이 확산 속도 예측에 실패했고, 지난 3일 시작된 새로운 방역체계도 총체적 난국에 빠졌기 때문이다. 동네병원, 재택치료, 자가진단이라는 키워드가 전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동네병원이 검사와 치료에 참여하게 된 것은 선별검사소의 PCR 검사 역량이 안 된 탓이다. 이미 1년 전부터 의료계에서는 대유행에 대비해 대용량 검사 장비 도입을 요구했으나 소용없었다. 사람들은 동네병원 어디에 가야 하는지 혼란스럽고, 호흡기 전담 클리닉 신청을 한 병원도 곤혹스럽다. 전담 병원으로 지정되면 의사가 24시간 대기하며 환자를 모니터링 해야 하는데 대부분 동네병원은 의사가 1명뿐이라 밤샘 근무가 어렵다. 일반 환자와 코로나 환자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환자가 폭증하면 재택치료 인원이 늘 것이니 빨리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경고가 수차례 있었지만 결국 안 됐다. 정부가 서둘러 인프라를 구축했다면 전체 확진자의 85% 정도인 일반 환자들이 시스템 밖으로 내몰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알아서 관리하라는데 정작 자가진단키트 구하기는 어렵다. 마스크 대란처럼 자가진단키트 대란 조짐마저 보인다. 전파력 강한 오미크론이 국내에 상륙한 지 두 달이 넘었는데 그동안 정부가 무슨 대비를 한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돌이켜보면 코로나 고비 고비마다 정부의 준비 부족은 반복돼 왔다. 세계가 미지의 바이러스에 속수무책당했던 코로나 초기에 우리는 판정승을 거뒀다. K방역은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지만 칭찬은 독이 된 듯하다. K방역에 도취된 정부는 중요한 고비마다 한발씩 늦었다. 각국이 백신 확보를 서두를 때 우리는 잘 하고 있으니 다른 나라 백신 맞는 것 보고 구입해도 늦지 않다고 오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이 하나둘 스러지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위드 코로나’ 체제로 전환했다. 그때도 중환자가 늘 수밖에 없으니 의료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하지만 중환자용 병실은 포화상태에 이르고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집에서 사망하는 환자가 나왔다. 세계적으로 위드 코로나 이후 치명률이 높아진 건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방역 완화 정책에도 견딜 수 있는 의료체계 구축이 안 됐기 때문이다. 방역패스 시행도 세심하지 못한 정책으로 사회적 반발을 불렀다. 바이러스는 계속 진화하는데 우리 방역시스템은 선제적 대응은커녕 뒤따라가기 급급했다.

새로운 방역체계에서 국민은 재택치료가 자칫 재택방치가 되지 않을까 불안하다. 이미 그전에도 전담 공무원과 연락이 안 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최근 격리해제 뒤 숨진 10대 고교생처럼 어떤 이는 허술한 재택치료관리로 생명을 잃기도 했다. 앞으로는 어떤 일이 닥칠 것인가. 청장년층 기저질환자 등은 사각지대에 남겨졌다. 일반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을 때 처치는 제대로 될 것인가. 정부는 이번 정책을 발표하면서 ‘모든 환자를 국가 책임 하에서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원칙을 그대로 준수하겠다’고 말했으나 솔직히 미덥지 않다. 이게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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