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때 고향 교회서 만난 선생님과 노래가 내 신앙의 씨앗”

박희천(오른쪽) 내수동교회 원로목사가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장진현 인턴기자




김남준(열린교회) 박경남(수지제일교회) 박성규(부전교회) 송태근(삼일교회) 오정현(사랑의교회) 오정호(새로남교회) 화종부(남서울교회) 목사…. 하나같이 전국 각지에서 대표적인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들이다. 그들은 2016년 박희천(95) 내수동교회 원로목사의 구순 감사예배에 모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박 목사를 두고 “평생의 스승”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정도면 그를 ‘목회자들의 목회자’로 불러도 될 듯하다. 박 목사를 국민일보 크리스천리더스포럼(CLF)을 이끄는 김영훈(70·덕수교회 장로) 대성그룹 회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만났다. 청력은 조금 떨어졌지만 박 목사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대담=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김영훈 회장=코로나19 감염병으로 세상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크리스천은 이런 때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박희천 목사=나는 매일 성경을 읽는다. 목사로서 성경 공부는 빼놓을 수 없다. 건강을 관리하면서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다. 크리스천은 언제든지 세상을 떠나더라도 하나님 앞에 어엿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생활을 항상 해야 한다.

△김 회장=1927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출생했다. 어떻게 처음 예수님을 알게 됐는지 궁금하다.

△박 목사=나는 비신자 가정 출신이다. 내가 교회에 가게 된 건 어머니의 권유 때문이었다. 어머니도 비신자였는데 교회에 가면 좋은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다고 어디선가 들으시고 나를 매 주일 김제교회로 보냈다. 여섯 살부터 교회에서 배운 노래와 그 노래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기억난다. 특히 여름에 평양에서 온 숭실대 학생 선생님들의 이름과 얼굴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기독교 신앙의 첫 씨앗을 심어준 김제교회를 평생 잊을 수 없다.

△김 회장=서울 내수동교회를 23년간 담임했다. 그때 일일이 성도들의 출석을 점검하고 소천한 성도들의 염을 하신 걸로 유명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박 목사=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염의 경우 당시에 김창인 충현교회 목사가 전문가셨다. 그분이 성도들을 위해 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냈다. 남자 성도는 내가 하고 여자 성도는 아내가 했다. 염을 하다 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두 가지 유익이 있더라. 하나는 즐겁다는 거다. 성도에게 천국에 갈 옷을 깨끗하게 입히고 나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다른 하나는 염을 하고 나면 그 자손들과 끈질긴 연이 맺어진다는 것이다. 아버지나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 세상 마지막 옷을 입힌 목사를 쉽게 잊을 수 있겠는가.

△김 회장=목회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박 목사=목사는 목자이고 성도는 양떼다. 첫째, 양떼에게 기름진 꼴을 먹이는 것이 목자의 일이다. 목회자는 설교로 성도들의 영혼을 살려야 한다. 둘째, 성도들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와야 한다.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 셋째, 양떼에게 영적인 고통이 있을 때 성경적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성도들에게 영적, 육신적, 경제적 고통이 있을 때 이들과 같이 울고 웃으며 일심동체가 돼야 한다. 교인들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한다.

△김 회장=시대의 변화 속에 목사와 성도들 간의 관계가 많이 변화하고 있다. 목사와 성도의 관계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 목사=목사가 성도들에게 인격적으로 신임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세월의 변화와 무관하다. 목사는 성도들에게 전적인 신임을 얻을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한다.

△김 회장=내수동교회 청년회는 청년들이 많이 모이기로 유명하다. 청년회가 견고하게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박 목사=1994년 주일 대예배 기준으로 출석 교인들의 연령 통계를 낸 적 있다. 30세 이하가 64%였다. 그 비율이 높아서 그때 나도 놀랐다. 그다음 해에는 30세 이하 비율이 66%로 나왔다. 청년들의 비율이 매우 높아서 이들에게 교회 직분을 주고 여러 책임을 줬다. 하지만 사실 난 왜 그렇게 모이는지 잘 몰랐다. 그때 청년회 담당 부목사는 “설교 때문에 그렇다. 청년들이 설교가 안 좋으면 안 나온다”고 했다. 지금도 우리 교회에는 청년들이 많다. 그걸 보면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김 회장=한국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 목사=의리를 지키는 청년이 되라고 하고 싶다. 의리를 못 지키는 젊은이도 간혹 만나게 됐다. 나는 늘 그들의 앞날이 걱정스럽더라. 멀리 가려면 의리를 지켜야 한다. 앞길이 구만리인데 의리를 못 지키고 어떻게 그 긴 인생길을 가겠는가. 사람 사이의 신의를 잘 지켜야 한다.

△김 회장=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28년간 가르쳤다. 목회자들에게 성경 공부를 매우 강조했다. 왜 성경 공부가 중요한가.

△박 목사=내가 젊은 시절에 우리집에서 40리 떨어진 곳에 최원초 목사님이라는 분이 살았다. 그분은 그 옛날에 요한계시록(요계)만 1만독 했다고 하셨다. 한국 교회에서 요계를 1만독한 사람은 내가 알기론 단 두 명이다. 초대교회 길선주 목사님과 최 목사님이다. 내가 초신자이던 1947년 무렵 최 목사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자네가 앞으로 목사가 될 생각이 있다면 성경 본문부터 많이 읽게.” 쉽게 납득은 안 됐지만 존중하는 뜻에서 그 말을 그대로 75년 동안 실천해왔다. 목회를 하는 동안 11시간 30분씩 성경을 읽으려고 애썼고, 은퇴 후 건강이 나빠진 뒤에는 7시간 30분씩 성경을 본다. 설교는 성경과 직결된다. 설교를 잘하려면 성경을 많이 봐야 된다.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20년가량 강의하는 동안 성경 읽으란 말을 숱하게 했다. 신학생들이 종종 “교수님이 최원초 목사님의 말에 도전받았다면 우리는 교수님에게 도전받는다”고 했다(웃음). 요즘 후배들에게 성경 읽는 걸 강조하는 목사가 별로 없는 게 아쉽다. 그건 성경을 많이 읽는 목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은 간단히 점령되는 책은 아니다. 내가 평생 쪼아댔는데 내가 성경을 안다는 정도는 태산의 4분의 3이라도 되나. 어림없다. 나는 태산을 거의 손가락으로 간지럽힌 느낌이다. 그나마 내가 평생 75년 쪼아서 조금 아는 정도다. 그렇게 안 하는 사람은 그 정도도 안 될 것이다.

△김 회장=요한계시록에 7개 교회가 나온다. 목사님은 7개 교회를 순례하기도 했다. 이 교회 중 한국 교회는 어디에 가장 가깝다고 보나.

△박 목사=글쎄…. 나는 정치 목사가 아니니까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김 회장=사무엘서를 포함해 강해서 5권을 냈다. 요즘 특별히 연구하는 성경 본문이 있나.

△박 목사=신·구약 중 잠언이 제일 어렵다. 내 소원은 잠언 주석을 쓰는 것이다. 내가 잠언 주석 준비 단계에 있다. 나는 1950년부터 매월 시편 하루 5편, 잠언 1장을 읽었다. 지난 연말까지 시편 780회, 잠언 780회 읽었다. 이제 잠언에 손을 대볼까 생각한다. 시편과 잠언을 매월 1회씩 읽었다. 잠언의 진리는 깊다. 주변 목사들이 잠언 주석을 빨리 써달라고 한다.

△김 회장=바람직한 지도자상이 있다면 무엇이냐.

△박 목사=간단하다. 강단에서 하는 말과 생활에서 보이는 행동이 같아야 한다. ‘멀리에서 보면 성자인데 가까이에서 보면 마귀’라는 말이 있다. 목사가 강단에서 외치는 것과 사생활이 달라선 안 된다. 나도 목회 낙제생에 불과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김 회장=영적 신비주의에 대해 어떻게 보나.

△박 목사=생각할 가치도 없다. 우리 믿음은 성경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김 회장=기독교인들이 요즘 비난을 많이 받는다.

△박 목사=비신자들은 “예수쟁이들이 말은 잘하지…”라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반박할 용기가 없다. 성도들이 모든 면에서 생활의 본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인이 입만 살아서 되겠냐. 우리가 잘 산다면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김 회장=곧 대통령 선거가 있다. 한국 교회는 때로 정치에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외면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교회와 정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나.

△박 목사=칼뱅주의는 교회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한다. 정치에는 항상 여야가 있다. 교회 성도 중에는 여야를 지지하는 측이 다 있을 것이다. 교회가 나서서 여나 야 한쪽을 지지하면 지지받지 못한 편에 선 교인은 상처를 받는다. 교회는 정치에 개입해선 안 된다.

정리=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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