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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호모 코뮤니타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태어났다면 분명히 삼위일체의 속성을 닮았을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인간 창조 기사에는 묘한 코드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26절에 ‘우리의 형상’이라는 말과 27절에 ‘자기의 형상’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복수이면서 단수이신 분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는다.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은 결코 흔들 수 없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이다. 몰트만은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이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공동체적 관계를 설명해 준다고 주장했다.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 남자와 여자는 구별된 존재이며 독립된 존재다. 그런데도 한 몸이 되게 하신 것이다. 이 독립성과 일체성, 구별성과 통일성이 하나님의 신비이면서 영성적인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로부터 시작된 ‘한 몸 되기’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점점 넓어진다. 노아에게 와서 한 가족으로 확대되고, 아브라함에 이르러서는 친족으로 넓어지며, 모세의 때에 민족으로 커지더니 다윗에 가서 국가로 확장되었다. 결국 예수에 이르러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주인과 종, 모든 인류가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임을 선포하고 있다.

이것이 ‘호모 코뮤니타스’ 즉 ‘공동체 인간’을 설명하는 핵심 골격이다. 진정한 공동체는 개별성과 일체성을 함께 갖고 있다. ‘삼위’는 개별성을, ‘일체’는 관계성을 설명한다. 사람은 개인의 주체성과 집단으로서 공생성을 소유한 ‘공동체 인간’이다. 주체성과 공생성은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한다. 공생성이 없는 주체성은 위험하다. 히틀러식 자유이기 때문이다. 주체성이 없는 공생성은 언제나 비참하고 고달프다. 늘 희생만 강요당하는 노예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자유의 길과 사랑의 길을 함께 가는 것이다.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왕의 길과 “나는 너다!”라고 말하는 종의 길이다. 예수는 ‘만왕의 왕’이지만 ‘고난의 종’이시기도 하다. 그래서 예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임과 동시에 ‘완전한 인간의 표상’이다.

우리 부부의 결혼 초기를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아내는 늘 희생만 강요당했다. 불행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도 행복하진 못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내가 단호하게 독립을 선언하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내의 주체성을 존중하기 시작했다.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는 그녀의 주체성을 살리는 방법이었다. 주체성이 살아난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동행해 주었다. 그녀가 가는 길이 나의 길이기도 하였다. 독립하기는 하나 되기의 전제다. 자유 없는 사랑은 비참하고 자유로 선택한 사랑은 행복하다. 역으로, 사랑 없는 자유는 위험하고 파괴적이지만 사랑이 있으면 아무리 자유로워도 안전하다.

전체주의는 봉건주의, 제국주의와 함께 물러갔다. 그러나 현대 이후 사회는 개인주의로 알알이 흩어져 또다시 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분열과 반목과 질시로 가득한 이 혐오 사회의 인간들은 영적 공황 상태에 이르렀다. 오늘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선거는 그러한 상황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한다. 어떻게 그토록 상대의 장점은 하나도 인정하지 못하고 극악무도한 존재로 규정하면서 자신은 시대적 도덕적 영웅으로 자부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힌다. 이기고 지는 것은 인간 회복이 이루어진 다음의 문제다.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하면 이겨도 져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경쟁을 떠난 진정한 ‘호모 코뮤니타스’의 영웅이 그 자리에 앉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유장춘(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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