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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돼지 바이러스 옮겨올라” vs “1형 당뇨환자 치료 대안”

가천대 길병원 김광원(왼쪽) 교수는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돼지 췌도 이식은 저혈당을 인지하지 못해 생명을 위협받는 1형 당뇨 환자들의 치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길병원



 
서울대의대 연구진이 췌도 이식에 쓰일 무균 돼지를 관리하는 모습. 서울대의대 제공
 
뇌사자 췌도·췌장 구하기 힘들어
국내 최초 이종간 장기 이식 추진
의료계 상업화 임상시험계획 제출
식약처선 종양 발생 가능성 우려
임상시험 승인 하반기에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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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말기 심장질환자에게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이 사상 처음으로 시도되면서 이종(異種)간 장기 이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돼지-인간 심장 이식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긴 아직 이르지만, 낡고 병든 인간 장기를 동물 장기로 대체해 난치병을 극복하는 시대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평가다.
심장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주목할만한 이종간 장기 이식 연구가 사람 대상으로 추진되고 있다. 돼지의 췌도(췌장 내 인슐린 분비 조직)를 중증의 1형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이다. 하지만 임상시험 허가를 두고 규제 당국과 연구진이 수개월째 줄다리기를 하는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 첫 이종간 장기 이식이 될수 있는 만큼 신중한 입장이며 특히 돼지 바이러스의 인간 전염, 발암 가능성 등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연구진은 “저혈당을 인지하지 못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1형 당뇨 환자들의 대안 치료에 대한 절박함과 국제적 선도 연구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며 신속한 승인을 요구하고 있다. 애초 다음 달 9일이 승인 심사 기한이지만 식약처가 요청한 추가 자료 보완 준비를 위해 연구진이 기한 연기를 요청할 것으로 보여 오는 9월까지 승인 여부 결정이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돼지 췌도 이식 임상시험 언제?

17일 식약처와 의료계에 따르면 2020년 8월 서울대의대 바이오이종장기사업단과 가천대 길병원, 제넨바이오는 돼지 췌도의 사람 이식을 위한 연구자 임상시험계획(IND)을 신청했다. 하지만 당시 비임상시험(동물실험 등) 및 품질 자료 부족을 이유로 심사 기한을 넘겨 무산됐다. 이에 지난해 8월 제넨바이오가 임상시험 주체를 자신들로 명확히 해 이번엔 상업화 임상(1상) 시험계획을 다시 제출했다.

임상시험이 승인되면 가천대 길병원에서 1형 당뇨환자 2명에게 돼지 췌도를 이식하게 된다. 췌도를 공급할 돼지는 서울대 의대가 제공한다. 현재 이곳은 급성 면역거부반응 억제를 위해 유전자를 조작한 형질전환 돼지 40여두를 무균 상태로 키우고 있다. 제넨바이오는 돼지 췌도의 분리 작업을 맡는다.

돼지 췌도 이식은 중증 1형 당뇨 환자 치료의 대안으로 오랫동안 연구돼 왔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사람간 췌도 이식은 2016년 이후 연간 1~2건, 췌장 이식은 이보다 많은 30~70여건씩 이뤄지고 있다. 뇌사자의 췌도·췌장을 구하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췌도는 췌장의 1% 정도를 구성하고 있는데, 췌장에서 간단히 분리해 수혜자의 간 혈관(간문맥)에 주입만 하면 된다. 한 번으로 생착이 안되면 2~3번 반복해 주입할 수 있다. 반면 췌장은 다른 장기처럼 복잡한 수술 과정을 거쳐야 해 환자 부담이 크다. 이런 측면에서 대량 공급 가능한 돼지의 췌도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일은 굉장히 매력적인 분야다.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내과 김광원 교수는 “이종간 이식에서 문제가 되는 면역거부반응 해결을 위해선 부작용 부담이 큰 면역억제제가 필요한데, 췌장의 1%인 췌도를 활용하는 게 면역억제제 사용을 최소화하는데 더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종간 췌도 이식의 대상은 1형 당뇨 환자 중에 연속혈당측정기나 인슐린펌프 등 혈당 조절 장비를 사용하더라도 저혈당이 와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혼수 상태나 쇼크에 빠지는 이들이다. 의료계는 이런 ‘저혈당 무감지증’ 환자가 국내에 1000~2000명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김 교수는 “이식한 돼지 췌도가 잘 생착해서 1년 정도 작동(인슐린 분비)을 하고 이식 후 저혈당을 인지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면 70%는 성공으로 본다”고 말했다.

1형 당뇨 환자들도 이종간 췌도이식에 긍정적이다. 1형 당뇨병환우회 김미영 대표는 “저혈당 무감지증 환자들의 경우 연속혈당측정기나 인슐린펌프의 도움을 받고 있으나 기기의 수치가 정상이라도 실제 저혈당 상태가 돼 대처가 안되는 긴급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기계에 100% 의존할 수 없다”면서 “이들에게 이종간 췌도 이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실제 저혈당 무감지증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들의 임상시험 참여 문의를 종종 받고 있다. 다만 식약처 승인이 나기 전에 환자 모집을 진행할 순 없고 준비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돼지 등 이종간 장기 이식은 심장 분야가 제일 앞서 있고 췌도, 각막, 신장, 폐 등에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췌도 이식은 우리나라가 선두 그룹에 해당된다. 김 교수는 “국제 연구를 리드하려면 수동적인 생각보다는 과감하고 전략적 결정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식약처 “안전성 확실해야”

반면 식약처는 임상시험 승인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 국내 ‘1호 이종간 장기 이식’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데다 안전성 이슈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종간 이식 장기는 2020년 8월 시행된 첨단재생바이오법에 따라 첨단의약품 중 ‘이종이식 제제’로 분류돼 5년간 장기 추적 관리가 이뤄진다.

식약처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돼지의 바이러스가 이식 췌도를 통해 인간에게 옮겨가는 것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아무리 무균 상태에서 관리된다 하더라도 돼지 종류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갖고있는 ‘레트로 바이러스(PERV-A, B 등)’가 있으며 이들이 사람에게 와서 어떤 일을 벌일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코로나19도 박쥐에서 인간 세계에 넘어와 지금 같은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돼지 레트로 바이러스들 사이에 재조합이 일어나 새로운 위험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도 있다.

식약처는 인간세포 감염을 일으키는 돼지의 바이러스나 세균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무균사육시설(Designated pathogen free)’ 입증 자료의 추가 제출을 요청했다.

또 하나는 암 발생 가능성이다. 췌도의 경우 이미 분화된 조직이라 종양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학계 의견이지만 식약처는 추가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일부 내과전문의들은 저혈당 무감지증 환자들도 현재의 연속혈당측정기나 인슐린펌프 등 대체 장비가 있어 충분히 관리 가능한데, 굳이 돼지의 췌도 이식이 필요한지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는 게 식약처의 설명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첨단 바이오기술의 임상시험 당위성과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위험성에 대해 통제 가능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확실해야하고 췌도 이식을 통해 얻는 이득이 실 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돼야 승인 가능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추가 보완 자료 준비에 3~4개월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해 당초 다음 달 9일로 예정된 식약처 심사 만료 기한을 추가로 연기 신청할 방침이다. 임상시험 승인 심사는 필요 시 2회까지 연기 신청할 수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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