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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가슴쓰림·신물 없는데… 위식도 역류질환?

이미지=게티이미지 제공
 
위식도 괄약근 약해져 위액 역류
한국인 70∼80%는 식도염 없어
목 이물감 등 비전형 증상 흔해
증상 비슷해 오진 가능성 많아
약먹고 낫지 않으면 다른 병 의심

“위식도 역류질환으로 위가 아플 수도 있나요?” “위식도 역류질환 약을 먹은 지 6개월이 넘었는데,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요.” “역류성 식도염과 위식도 역류질환은 다른 건가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위식도 역류질환 관련 상담글들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비만과 고지방 식사, 음주·흡연,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위식도 역류질환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2020년 이 질병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450만명을 넘었다. 위식도 역류질환은 식도와 위를 연결하는 부위의 괄약근(조임근)이 헐거워져서 강한 산성의 위액과 음식물이 거꾸로 올라와 불편함이나 합병증을 일으키는 병이다.

문제는 위식도 역류질환과 증상이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아닌 경우도 적지 않아 오진되거나 약물 처방이 남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10년간 급격한 위식도 역류질환 증가와 함께 치료약인 ‘위산 분비 억제제’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약물 과다 사용 문제가 의료계에서 제기됐다.
 
의료계, 새 진료 지침 마련

위식도 역류질환의 전형적 증상은 가슴 쓰림과 신물 역류(넘어옴)다. 하지만 두 가지 증상없이 목에 뭔가 걸린듯한 느낌(이물감), 쉰 목소리, 가슴 답답, 흉통, 만성 기침 등의 비전형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땐 위식도 역류질환일 가능성이 비교적 낮다. 서양인과 달리 아시아인들에서 비전형적 증상을 더 많이 겪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위식도 역류질환으로 오인돼 장기간 부적절한 치료를 받는 사례가 흔해지자 관련 학계가 한국인 포함 아시아인에 적합한 임상진료 가이드라인을 새로 마련하고 환자들의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와 아시안소화관운동협회가 공동 진행한 이번 임상진료 지침 개발에는 아주대병원 소화기내과 이광재, 이화여대목동병원 정혜경, 이대서울병원 태정현 교수 등을 주요 책임자로 국내외 전문가 30여명이 참여했다. 해당 연구결과는 대한소화기기능성운동학회지 최신호에 발표됐다. 아주대병원 이광재 교수는 10일 “목에 뭔가 걸린 듯하고 약간 붓는 등의 비전형적 증상이 있으면 이비인후과나 일반 내과를 주로 찾는데, 진짜 위식도 역류질환인지 정확한 진단 없이 위산 분비를 줄이는 약물을 처방하고 있다”면서 “한마디로 가짜 위식도 역류질환에 약물 처방을 남발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통계상 위식도 역류질환 진료 환자가 급증한 데는 진짜 보다 그것처럼 보이는 환자들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목의 이물감은 후두염, 부비동염(축농증), 후비루증후군(코 점액이 목 뒤로 넘어가는 증상) 등에 의해서도 겪을 수 있어 위식도 역류질환과 감별이 필요하다. 흉통은 협심증이나 골격 신경통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다. 만성 기침은 천식이나 기관지염이 원인일 수 있다.

아울러 위식도 역류질환에는 여러 아형(하위 유형)이 있는데, 이를 감별하고 그에 맞는 치료법이 따라줘야 한다. 내시경 검사에서 식도에 역류로 인한 염증이나 상처가 발견되는 ‘미란성 위식도 역류질환(흔히 말하는 역류성 식도염)’외에도 식도는 정상인데 24시간식도산도(pH)검사를 해보면 산도가 높게 나오는 ‘비미란성 위식도 역류질환’, 병적으로 심하지는 않지만 정상범위 내 역류로도 불편한 증상이 나타나는 ‘역류 과민성’ 등 다양한 유형이 있다.

이대목동병원 정혜경 교수는 “특히 역류 없이 증상만 나타나는 경우를 ‘기능성 가슴 쓰림’이라고 하는데, 이는 위식도 역류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위산 억제 약을 장기간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기능성 가슴 쓰림은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에게 잘 생긴다.

이광재 교수는 “위식도 역류질환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며 소화기내과에 오는 환자들 중에는 ‘내장 신경 과민’인 경우가 많다. 내장 신경은 식도에서 항문까지 내장 전반에 분포하는데, 스트레스나 긴장, 불안, 불규칙한 생활습관에 의해 신경이 예민해지면 비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쉽다. 목에 침이나 점액이 지나가도 이물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정확 진단 위해 식도산도검사 필요

위식도 역류질환의 아형까지 정확히 감별하려면 흔히 하는 내시경검사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인에서는 내시경으로 식도의 손상이 관찰되는 전형적인 위식도 역류질환자는 20~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식도염을 동반하지 않아 내시경검사로 놓칠 수 있다. 이런 땐 식도로 넘어온 위산 수치를 측정하는 24시간식도산도검사와 식도내압검사 등 정밀검진을 받아야 한다. 24시간식도산도검사에서 pH가 4 이하로 나오면 ‘병적 역류’가 있다고 판단한다.

정 교수는 “24시간식도산도검사는 진단에 효과적이지만 장비와 비용이 비싸 주로 대학병원에서만 이뤄지고 개원가에선 거의 시행 안하고 있다”면서 “병·의원급에선 내시경검사만 하다보니 식도가 살짝만 부어 있어도 식도염 진단과 위산분비 억제 약을 처방하는 경향이 있는데,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대학병원에서 식도산도검사를 추가로 받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위산분비 억제 치료제를 2~4주 먹었는데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위식도 역류질환이 맞는지부터 확인해 한다. 위산분비 억제 약을 장기간 복용할 경우 골다공증이나 골절, 장염, 폐렴, 치매, 관상동맥질환 등 부작용 위험이 높다고 보고돼 있어 효과 없는 약을 계속 먹을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위식도 역류질환은 재발이 흔해 상당수 환자들이 위산분비 억제 약을 장기간 복용하고 있다. 이 경우 가능하면 매일 약을 먹지 말고 증상이 심할 때 며칠간 복용하고 증상이 사라지면 중단하는 방법을 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환자는 내시경검사에서 식도 손상이 심한 환자는 10명 중 1명도 되지 않고 대부분은 경도의 식도염이 있거나 식도염이 없는 비미란성 위식도 역류질환자들”이라며 “증상이 나타날 때만 약물을 복용하는 ‘필요시 요법’으로 약물 복용을 가급적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과체중이거나 비만한 경우엔 체중 감소가 위식도 역류질환 발생을 줄일 수 있다고 권고했다.

근래엔 장기간 약물 복용의 대체적 방법으로 헐거워진 위·식도 조임근을 강화하는 수술(항역류 수술)도 많이 시행되고 있는데, 이 역시 수술 전에 꼭 위식도 역류질환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정 교수는 “서양에서는 비만한 위식도 역류환자가 많아 수술로 해결하는 사례가 많다. 그런데 국내에선 불필요한 환자에게도 항역류 수술이 시행되는 경우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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