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 광야에서 바쁘게 일하신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2016년 5월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래목회포럼 54차 정기포럼에서 ‘한국교회, 영성의 길’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해석과 비유는 탁월했다. 이념에 눈 먼 공산주의는 혁명을 완성하는 날을 꿈꾸며 달려가고, 기독교는 대심판의 날을 목표로 한걸음씩 나아간다고 설명했다. 한국교회가 불신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교회와 교인이 늘어나는 영적인 나라임에 틀림없다고 했다. 아무런 기독교 전통이 없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하나님을 받아들인 나라라는 얘기다. 이 전 장관은 하나님은 교회 안에 앉아 계시는 게 아니라 광야에, 교회 밖에서 바쁘게 일한다고 했다. 이 곳에서 하나님은 길 잃은 이들에게 길을 알려주고, 우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웃는 자들과 함께 박수치면서 살아 숨 쉬는 천국을 만들어 가고 계신다고 강조했다.
 
‘故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 재정리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영혼은 내 것이 아니에요. 죽고 난 후는 아무도 모르지요.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말은 모두 우리가 사는 현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고 보니까 사후가 기가 막힌 거예요. 으리으리한 집에 하인이 수천 명이 넘고요. 그런데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일주일이 지나니까 너무 심심한 거예요. 그래서 자동차 타고 드라이브나 갈까, 직접 요리나 만들어 먹을까 하는데 뭐만 하려고 하면 하인들이 안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는 뭐든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지만 당신이 직접 하는 것만은 안 된대요. 그래서 그 사람이 ‘이 따위가 천국이면 차라리 지옥에 가서 살겠다’고 말해요. 그러니까 하인들이 하는 말이 ‘주인님, 여기가 천국인 줄 알았어요? 여기가 바로 지옥이에요.’ 부딪치고 싸우고 피를 흘리면서도 참된 의미를 찾는 곳이 천국이지요. 흔히들 이야기하는 금은보화, 물질로 장식된 그런 곳이 천국이 아니에요. 서로 사랑하고, 자기가 먹을 거 자기가 벌고, 서로 나눠 먹고, 이런 참된 의미가 있는 곳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천국이지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사람이 누굴까요. 모든 걸 성취한 사람이에요. 애들한테 제일 고통스러운 게 무얼까요. 엄마, 나 심심해. 심심한 곳이 바로 지옥이에요.”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요.

“당연히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립니다. 오히려 신앙이 없으면 더 잘 살기도 하죠. 욥은 하나님을 참 믿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큰 재앙이었습니다. 그는 부귀를 누리기 위해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에요. 현세에서 잘살고자 믿는 것은 기복 종교예요. 부귀와 영화는 탕자의 것, 지상의 것입니다. 복지국가는 정부에서 가난한 사람을 지원해주잖아요. 복지국가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는 복지국가는 수십 년의 고난을 겪고도 광야를 무사히 통과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가나안과도 같은 곳입니다.

모든 예언자는 부귀를 위해 신앙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다.”(마 7:7)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뭘 구합니까. 돈과 부귀와 영화를 달라고 하지요. 이 세상에서는 절대로 구할 수 없는 것, 생명과 사랑을 주옵소서 하면 반드시 주실텐데 그걸 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 7:8) 하셨지만 애들이 달란다고 다 주는 어른들이 없듯이, 불의나 세속적 욕망에서 나오는 욕구는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마 22:21) 맡겨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엉뚱하게도 하나님의 문 앞에서 카이사르의 문을 두드려온 것입니다. 하나님 얼굴을 그린 지폐 한번 생각해보세요.”

-성경에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하는데, 부자는 악인이라는 말인가요.

“저는 이것이 성경에서 가장 잘못 알려진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두절미하고 이 한 구절만 떼놓고 보니까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한 청년(부유한 자)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자신도 천국에 갈 수 있는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마 19:21) 하고 답하세요. 청년이 근심하며 떠나니 또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3~24) 버려야 천국에 갈 수 있는데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은 그걸 쉬이 버리지 못해요. 하지만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게 “쉬우니라” 했지, 부자가 천국에 못 간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가진 게 너무 많으면 버리고 가기가 힘들 뿐 부자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새도 뚱뚱하면 못 날아요. 그래서 고단백질을 먹는 것이지요. 물오리와 덩치도 같고 날개도 있는데도 닭은 날지 못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가난한 자들은 다 천국에 가느냐. 아닙니다. 자, 그 낙타 이야기 어떻게 끝나는지 다시 읽어봅시다. 제자들은 가난한 자가 아니라 부유한 자가 천국에 가는 줄로만 알았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 그럼 누가 천국에 가느냐고 묻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가난한 자 부유한 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치지 않은 자는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지요.

-미국은 사실상 국교가 기독교인데 왜 그리도 범죄와 사회 혼란이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나요.

“맞습니다. 문제가 많은 나라이지요. 미국은 결코 타의 모범이 될 수 없는 나라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범죄도 없고 대낮에 살인도 안 하는 아주 조용한 비기독교의 전체주의 국가들이 많습니다. 미국은 아무리 시끄럽고 대통령을 비롯해 정상급 지도자들이 대여섯 명씩이나 암살을 당해도 끄떡 없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자유의지’가 인간이 절대 버릴 수 없는 천성이기 때문이지요.”

-일부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이것은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그런 것을 ‘파나티시즘(Fanaticism)’이라고 합니다. 신앙과 무관하게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현상이지요. 그런데 유독 그러한 현상이 기독교와 공산주의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은 종말론 같은 절대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념에 눈이 멉니다.”

-흔히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합니다. 그럼 폴란드, 동유럽 및 남미 일부 국가처럼 교회가 많은 국가는 어떻게 공산국이 되었을까요.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병철 회장 때와 달리 오늘날은 남미 쪽에서 더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얼핏 유신론과 유물론, 정반대되는 사상이면서도 그 바탕에는 의외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바로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창녀를 비롯한 사회 약자들, 병자들을 포용하지요. 공산주의 역시 소외된 인민, 대중을 그 혁명의 기반으로 봅니다. 이를테면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이라고 할 때, 우리는 보통 무산계급이라고 하지만 그 원래의 뜻은 나라에 바칠 것이 아이밖에 없는 가난한 계층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사회 약자를 돌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그런 소외 대상을 계급 혁명이라는 투쟁의 힘으로 보았고, 기독교는 구제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둘을 구분 짓는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뿐입니다. 두번째로, 원래 소련의 공산주의와 러시아 말기의 정교(正敎)는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갈등 관계에 있었지만 실제로 공산주의는 그 러시아의 전통적 정교회 사상을 차용한 게 많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우주주의자와 유라시아주의자들의 사상과 정책이 그렇지요. 니콜라이 표도로프(1829~1903)가 특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도서관 사서였던 그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당대 모든 광범한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박식한 인물이에요. 표도로프는 과학의 힘을 빌린 부활을 믿은 창조적 종말론자입니다. 자신이 유전공학으로 죽었던 아버지를 살려내고, 아버지가 또 자신의 아버지를 살려내면, 이 지구에 죽었던 사람들이 다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러면 지구가 부활한 사람들로 넘쳐나잖아요. 그럼 다 어디로 가야겠어요. 우주로 가야지요. 이런 표도로프의 사상이 영토 확장의 방향을 수평에서 수직으로 돌린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실제로 과학을 이용해 로켓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러시아가 미국을 앞서 인공위성을 먼저 쏠 수 있었던 거예요. 러시아가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표도로프가 사서로 있던 바로 그 도서관에서 표도로프를 스승으로, 그 영향 밑에서 도서관을 매일 다녔던 콘스탄틴 치올콥스키(Konstantin Tsiolkovsky·1857~1935) 때문이었지요. 독학을 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표도로프의 분부로 로켓 연구와 설계를 하게 됩니다.

황당하다고요? 아닙니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는 지금 우주선을 띄우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인간을 2030년까지 화성으로 이주시켜 지구 탈출 기획을 발표한 적도 있어요. 그 유명한 호킹도 죽기 전에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그들이 지배하는 지구를 탈출하기 위해 거대한 로켓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나요. 이게 140년 전에 표도로프가 지구 탈출을 꿈꾼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기독교, 러시아 정교의 부활론이 공산 국가의 과학기술, 로켓기술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된 거예요. 이것이 현재 미국과 러시아에서 동시에 작동 중인, 지구는 인간의 요람이지만 언제까지나 그 요람에서만 살 수 없다는 ‘우주 개발’ 정신인 것입니다. 세번째로, ‘엔드 오브 히스토리(End of History)’, 종말론입니다. 대개 모든 나라의 역사관은 둥근 원처럼 순환하는 원리로 되어 있지요. 그런데 유독 기독교와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선형적입니다. 시작점과 끝나는 점이 있는 거예요. 기독교에서는 대심판의 날이 그것이고, 마르크스에서는 혁명을 완수하는 그날이 그들의 역사의 끝, 엔드 오브 히스토리인 것입니다. 즉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는 혁명을 완수하는 날을 목표로, 또 대심판의 날을 목표로 향하는 단계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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