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일 기자의 미션 라떼] 예수가 죽음의 자리서 전한 평화… 언제쯤 올까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1914년 12월 24일 벨기에 이프르 전선에서 잠시 휴전한 영국과 프랑스, 독일군이 축구 경기를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1914년 12월 벨기에 서부 이프르에서 영국과 프랑스군, 그리고 독일군이 연합국과 동맹국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각자의 참호에 몸을 숨긴 군인들은 소모적인 전투를 반복하며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됐지만 긴장은 여전했다. 불안했던 적막을 깬 건 독일군 진지에서 흘러나온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다. 모두가 즐겨 부르던 캐럴이 연합국 참호에도 닿았고 전장의 군인들은 각자의 언어로 캐럴을 불렀다. 죽음이 가득하던 공간이 온기로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참호 밖으로 먼저 나온 건 독일군이었다. “지금 나간다. 쏘지 말아라. 우리도 쏘지 않겠다.” 곧 각국 장교들이 중간 지대에 모여 크리스마스 동안 휴전하기로 합의했다.

총탄이 빗발치던 전쟁터에 평화가 깃들었다. 이프르 전선에 있던 1000여명의 군인들이 쏘아 올린 크리스마스 휴전 소식은 벨기에 전역으로 확산하며 곳곳의 전선에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왔다.

총을 내려놓은 군인들은 조심스럽게 참호에서 나와 조금 전까지 적이던 이들을 만났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 참호에서 벗어난 군인들은 전쟁 전 서로의 국가를 여행하던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갔다. 각자의 가족사진을 보여주는 군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고 한다. 음식을 나누고 캐럴을 부르며 아기 예수가 오신 걸 축하했다. 참호 사이에 널브러져 있던 전사자를 수습해 장례도 치렀다. 그리고는 축구공을 차며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유럽 대륙을 할퀴었던 전쟁 현장에 피어난 평화의 꽃은 아름다웠다. 믿기 힘든 이야기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하지만 극적인 서사는 지독한 양면성을 지녔다. 1차 세계대전은 인류가 경험했던 첫 번째 대량 살상 전쟁이었다. 발전된 기술이 비극을 불렀다. 연합국과 동맹국 모두 분당 400발 이상 쏟아낼 수 있는 기관총으로 무장했다. 굉음을 내며 상대방 진지를 향하는 총탄을 피하기 위해 군인들은 땅을 파고 몸을 숨겼다. 1차 세계대전이 참호전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미로와도 같은 참호 사이에 놓인 폭 100m 남짓한 공간에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고 날카로운 철조망이 놓였다. 이른바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다. 사람이 없는 땅이라는 의미다. 대신 죽은 군인들이 그 자리를 지켰다. 시체를 먹고 몸집을 키운 쥐들은 참호를 오가며 전염병을 실어 날랐다.

1차 세계대전 참전국 대부분이 기독교 국가였다는 건 역설이다. 상대를 향한 증오심에 신앙이 더해졌다. 군인들은 ‘나는 살려 주시고, 적을 죽이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프르 전선에는 비극의 역사가 더 굵게 남았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나고 고작 4개월 뒤 독일군은 이프르의 연합국 참호를 향해 167t의 염소가스를 살포했다. 독가스를 마신 1000여명의 영국과 프랑스군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4000여명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잠시 찾아온 희극은 비극으로 향하는 통로였을 뿐이었다.

아기 예수는 평화를 전하기 위해 우리 곁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까지 씻어 주셨다. 죄 사함을 받은 인류는 평화 대신 전쟁의 길을 택했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총합인 이유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 펼쳐진 살육의 자리에서 ‘나는 살고 적은 죽게 해 달라’는 기도가 하늘로 향한다. 그 기도를 피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성탄의 아침이 밝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예수가 바랐던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다툼과 죽음의 자리마다 예수가 전했던 참 평화가 깃들길 기도하는 건 어떨까. 메리 크리스마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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