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드’는 생명 키우는 어머니 자궁 같아… 그곳이 창조의 공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73세의 나이에 일본 도쿄 프린스 파크타워 호텔에서 열린 온누리교회 ‘러브소나타’ 문화전도 행사 기간이던 2007년 7월 23일 하용조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온누리교회 제공


질문을 보면 답이 나온다고 했다.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논어를 정독하면서 맹자의 사상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공맹을 통해서는 사후 세계를 알 수가 없었다. 관상이나 역술로 죽음 이후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실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영인으로 평생을 달려왔지만, 문득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깨닫게 된다. 그는 세상과 이별하기 한 달 전까지 '그래도 기독교가 아닐까'하는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24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이 회장이 종교의 필요성을 이미 공감한 상태에서 다시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했다. 인간에게 종교는 필수적임을 재확인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철학자 칸트도 결국 그 필요성을 인정한 셈이라고 했다. 이 전 장관은 아주 어려운 문제도 간단하게 쉬운 말로 설명했다. 그는 우주와 통하는 특수한 공간을 어머니의 자궁 속이라고 표현했다. 세상과 통하지 않는 곳이라야만 생명이 자라난다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자궁과 우주의 '보이드(void)'가 통해져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 거기가 바로 생명의 공간이요 창조의 공간이라는 말씀이다.
 
‘故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 재정리

-영혼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이미 찻잔 하나로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찻잔을 만드는 물질은 인간의 육체에 해당해요. 플라스틱 컵이면 플라스틱, 유리 컵이면 유리. 우리의 육체도 그 컵들의 질료처럼 우리의 몸뚱이를 이루는 물질인 거예요. 그런데 컵과 그릇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요. 그들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컵의 본질은 무언가 담는 것이고, 무언가 담으려면 비어 있어야 합니다. 컵의 본질은 유리나 플라스틱 같은 물질에 있는 게 아니라 비어 있는 성질에 있어요. 비어 있지 않으면 컵에 무엇을 담겠습니까. 아무 역할도 못 해요. 비어 있는 게 그릇의 본질입니다. 그 빈 공간을 ‘보이드’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빈 컵에 커피를 따르면 커피잔, 물을 따르면 물잔이 되어 빈 공간이 없어져요. 그러면 이 컵은 더 이상 다른 것을 담을 수가 없지요. 이미 무언가 담겨 있으니 더 담을 수 없어요. 그게 ‘마인드(mind)’예요. 컵과 그릇 물질 자체는 ‘보디(body)’입니다. 만약 유리 컵이 깨지면 담고 있던 액체도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보디도 마인드도 없어집니다. 하지만 텅 비어 있던 공간, 그것은 어디로 갔을까요. 깨졌나요? 없어졌나요? 아닙니다.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 비어 있는 공간은 저 은하계, 빅뱅이 일어난 저 우주와도 통하고 있지요. 상상해보세요, 우주도 비어 있으니까 우리가 달나라도 가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릇은 보디, 그릇을 채우는 욕망이 마인드. 그릇이 깨지면 담겨 있던 게 다 쏟아지듯 죽으면 육체도 욕망도 다 없어집니다. 깨지고 쏟아져도 남아 있는 빈 공간, 모든 그릇의 비어 있는 부분, 보이드. 그게 스피릿(spirit)이에요. 스피릿은 우주의 것이지요. 내가 죽어도 내 안에 있던 우주의 스피릿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영성이 중요한 거예요. 몸뚱이도 내 것이고 마음도 내 것이지만 그 영혼만은 내 것이 아니에요.”

-실제로 이 세상에서 그 우주와 통하는 특수한 공간을 컵 말고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나요.

“네, 있지요. 바로 어머니의 자궁 속이에요. 그곳은 세상과 단절되어 있어요. 세상과 통하는 곳에서 아기가 자라면 큰일이지요. 죽어요, 유산이에요. 그렇게 이 세상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이 열 달 동안 자궁 속에서, 우주의 보이드 속에서 자라납니다. 그러다 알아서 태어나요. 아이는 어머니가 낳으려 한다고 나오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나오려 해요” 그러잖아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알아서 자라고 생일날까지 다 받아서 나오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어머니의 자궁과 우주의 보이드가 통해져 있다는 증거예요. 이것을 플라톤은 ‘코라(Chora)’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거기가 바로 생명의 공간이요 창조의 공간입니다.”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입니까.

“보세요. 물질적 현실은 다 똑같아요. 각설탕은 모양도 맛도 똑같아요. 그런데 그 각설탕을 아이들에게 줘보세요. 어떤 애는 그걸 먹어버리지만 어떤 애는 그걸 가지고 놀아요. 바벨탑처럼 쌓거나 집을 짓기도 하고 레고처럼 임기응변해서 여러 가지 형태를 만들어내요. 구축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이들 저마다 달라요. 먹는 것은 같아도, 가지고 노는 것은 신기하게 다 달라요. 하나님도 신도 사각형의 흰 각설탕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구축하는 아이의 영혼, 마음속에서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종교적 영역은 지성의 영역이 아니라 영성의 영역입니다. 영성이 뭔지 모르겠으면 (인간욕망의) 가장 밑에 있는 ‘에로스(Eros·관능적 사랑)’의 사랑을 생각해봐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정말 죽어도 좋아!’라고 목숨까지 걸잖아요. 보다 높은 단계에 가려면 가장 아래 단계에서 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되는데, 사다리에 걸려 있는 지붕 너머는 허공이야. 여기까진 발을 디딜 곳이 있는데 위에는 비어 있는 칸이죠. 그거(허공)를 밟고 올라가느냐 안 올라가느냐는 것은 믿음밖에 없는 거지요. 디뎠는데 없으면 떨어져 죽는 것이고…. 디뎌서 올라갈 수 있다면 그때부터 상승하는 것이죠.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지하철 입구가 하나가 아닌 것처럼 종교도 여러 가지 종교가 있습니다. 불교면 불교, 기독교면 기독교라는 여러 입구가 있는 거지요. 어느 구멍이든 일단 들어가면 지하철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열차 두 대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 서로 다른 노선을 천국과 지옥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마치 해리포터 9와 4분의 3 승강장처럼, 애초에 타려고 했던 노선과 전연 다른 미지의 통로가 나타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법학 공부를 위해 떠났던 마틴 루터는 벌판을 지나다가 강력한 벼락을 만나 죽음의 공포를 느껴요. 광부의 아들인 그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 안나에게 “성 안나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저는 수도자가 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두려움 속에 무의식적으로 나온 기도와 약속, 바로 그것이 개신교에서 종교개혁을 이룩하려고 했던 마틴 루터가 처음으로 위대한 하나님을 맞이하는 입구가 된 것입니다. 애초에 그는 종교 개혁을 하려던 꿈도 꿔본 적이 없고 오로지 법학 공부를 하려던 것인데 말이지요.

-기독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나요.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성경 어디에 쓰여 있는지 나는 아직 모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길거리에 나그네가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고 있는데 제사장도 레위인 사제도 다 못 본 척하고 지나가요. 이교도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만 나그네를 살려주고 갔어요. 그러면 기독교인이 천국에 가겠어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천국에 가겠어요. 이러면 제사장이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아무 관련도 없는 이교도가 천국에 가는 거예요.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기독교 정신을 가진 사람이면 천국에 가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가 세계 종교가 된 겁니다. 기독교인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다면 세계 종교가 못 됐어요. 오늘날의 기독교가 안 됐습니다.”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요.

“예수님 자신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하고 말씀하신 뒤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10) 하셨습니다. 소위 말하는 칠 복이지요. 그 복을 천국으로 바꿔보세요. 다 천국으로 간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처럼 애통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선인 중에도 생명을 존중하고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한 인자한 선비들도 많았어요. 제 생각으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그분들도 모두 천국에 가 있을 것입니다.”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개신교만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배척하나요.

“기독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가르칩니다. 그런데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런 기독교인이 배타적이라고요? 구교든 신교든 오른쪽 뺨을 맞거든 왼쪽 뺨을 내주라고 하는 종교가 남을 배타해요?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그건 신·구 가릴 것 없이 기독교 정신에서 벗어난 사이비 종교입니다. 가톨릭이 종교재판을 하고 면죄부를 발행하고 하니까 하나님과 직접 소통을 해야겠다 싶어서 만든 게 개신교입니다. 전유물이 아니에요. 배타가 아닌 개혁이었지요. 그래서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한 거예요. 신·구의 삼십 년, 백 년 등 종교 전쟁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고통과 시련을 낳았고, 결국 볼테르의 관용론처럼 화해의 길로 일단락 수습이 되어갑니다. 정치적으로는 베스트팔렌조약의 주권국가가 그 와중에서 탄생한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날 새롭게 지향하는 종교 간의 관용과 대화가 공존의 세계를 열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아직도 종교분쟁 지역에서는 해묵은 상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잔존하고 있어요. 교황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는 시대에 다시 옛날 신·구 갈등의 배타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만약 오늘날 신·구 대립이 다시 불거진다면,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처럼,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역사의 망령을 경계하자는 뜻으로만 새겼으면 합니다.”

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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