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캄캄한 마음 속 방에 회개하는 묵상의 빛 밝혀 그리스도를 초대하라






 
토마스 아 켐피스가 친필로 쓴 ‘그리스도를 본받아’ 원고.


15세기 네덜란드의 한 수도사가 신입 수도사들의 영성훈련을 위해 쓴 한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은 수 세기 동안 많은 사람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영향을 미쳤다. 1427년에 저술된 책은 필사본으로 전해지다가 인쇄술이 발명된 후 2000개가 넘는 판본으로 출간됐고 마르틴 루터, 존 웨슬리, 존 뉴턴, 디트리히 본회퍼 등 영적 거장들의 회심을 이끌어 냈다. 존 웨슬리는 “이 책을 읽고 나의 삶을 주님께 헌신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함께 기독교 3대 고전으로 꼽힌다. 이 불멸의 고전은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아래 사진)가 쓴 ‘그리스도를 본받아(The Imitation of Christ)’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평생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13세에 네덜란드 데벤터르에 있는 공동생활형제회에 들어가 공동체 정신과 신앙을 배웠다. 여기서 배운 삶의 방식을 지속하기 위해 19세에 아우구스티누스 참사회의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됐고 1429년 수도원의 부원장이 됐다. 그는 세상을 떠날때까지 이 수도원에서 신입 수도사들을 가르치고 저술과 필사, 기도와 명상 등으로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묵상의 씨앗’을 심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한 세기 전 사람이다. 당시 시대는 흑사병, 교회 분열, 계급 간 갈등 등으로 일상이 불확실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교리와 신학을 추구하기보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길 원했다. 신학보다 경건을, 사색보다 예배를, 형식보다 내적 체험을, 의식보다 예수님을 좇았다. 그는 내면의 방을 구축하며 평생을 보냈으며, 그 방은 조용히 그리스도를 만나는 방이었다.

그의 영적 깨달음을 담은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4권으로 구성됐다. 1권 ‘영적 삶에 유익한 권면들’은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권 ‘내면 삶에 관한 권면들’은 내면을 깊숙이 살피면서 영혼을 보살피라고 요구한다. 3권 ‘내적 위로’는 예수님과 제자의 대화를 담았다. 4권 ‘성찬에 관한 경건한 권면’은 예수님과 제자의 대화가 계속되지만, 성찬식에 집중한다.

켐피스는 책에서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을 따르라’는 단순한 가르침을 전하지만 독자들은 영적인 찔림과 순복을 경험한다. 그의 영적 깨달음을 따라가다 보면 자갈밭 같던 마음을 갈아엎고 묵상의 씨앗을 심게 된다. 황무지 같았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방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 어두웠던 방에 촛불이 하나 켜지고 그 밝음은 점점 커진다. 그는 책 전체를 통해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서 드러난 참된 경건의 특징인 자기 부인, 겸손, 순종, 고난 중의 인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등의 덕목에 자신을 온전히 드리라고 권면한다.

그는 당시 교회 내부에 존재했던 교리상의 갈등에 반발해 우리가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신학적 지식은 무용지물일 뿐이라고 강력하게 선언한다. “어떤 사람이 성경 전체를 줄줄이 다 꿰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자의 금언들도 빠짐없이 다 암송하고 있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 사랑과 은혜가 없다면, 그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1권 1장 3절) 복음을 들어도 감동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길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회개의 정의를 아는 것보다는 죄에 대하여 회개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었다. 그는 회개로 영적 묵상을 시작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고상한 말로 늘어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어떤 것들에 대한 심오한 정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되기보다 내 심령 안에서 회개가 일어나 실제로 낮아져서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1권 1장 3절) 회개는 곧 자기부정과 겸손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방

우리가 어느 곳에 살든 내면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공간을 준비해야 한다. 이 작업은 회개로 마음을 비워내고, 마음의 밭을 옥토로 만드는 작업과 같다. “당신의 내면에 그리스도께 합당한 거처가 마련되기만 하면, 주님은 당신에게 오셔서 당신을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내면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해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그 어디에서도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2권 1장 1~3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보시는 것처럼 스스로 우리를 볼 수 있는 겸손한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제대로 잘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온전한 최고의 지식입니다. 자기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생각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낫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크고 온전한 지혜입니다.”(1권 2장 4절)

영적 생활에 있어서 항상 조심할 것은 자기 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자기 의를 드러내는 사람이 보이는 현상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행동을 인정받거나 칭찬받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고 무익한 일이다. 켐피스의 조언대로 내면을 깊숙이 살피면서 영혼을 보살펴야 한다. 그러면 남의 일에는 덜 신경 쓰게 된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찾는다면 우리는 다른 이가 필요 없다. 그때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게 된다. 기꺼이 그 십자가를 짊어진다면 우리 부담은 한결 가벼워진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 그들의 사적인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깊은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여하고, 자기 영역이 아닌 곳에서 기회를 엿보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통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마음이 단순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은 큰 평화를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1권 11장 1절)

그리스도를 내 안에 받아들여 그가 나의 주인이 됨을 고백하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다. 켐피스는 예수님이 베푸신 이적들에 경외감을 나타내는 사람은 많지만 치욕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적다며, 하나님과 하나 되는 최고의 목적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거룩한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적습니다.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은 많지만, 고난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식탁 교제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금식하려고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위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큰 위로 가운데 있을 때나 환난과 마음의 괴로움 가운데 있을 때나 언제나 변함없이 예수님을 송축합니다.”(2권 11장 1절)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한 수도사가 다른 수도사의 영적 훈련을 위해 쓴 책으로 한정되지 않고 오늘을 사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을 향한 메시지로 화살처럼 날아와 깊숙이 박힌다. 책은 묵상이나 기도하기 전에 하루 한 장씩 읽으면 좋다. 켐피스는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과 깊은 겸손,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 인간성에 대한 통찰력과 너그러운 이해심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뢰할 만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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