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마음속에 양날의 칼 ‘절대 반지’가 있다, 지금 떠나라 구원의 원정길을











J. R. R. 톨킨(1892~1973·아래 사진)은 신앙에 닻을 내린 영국의 판타지 작가이다. 현대 판타지 문학의 걸작이자 고전으로 꼽히는 ‘호빗’과 ‘반지의 제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의 저작들은 이미 30개 넘는 언어로 번역됐다. 특히 세계 3대 판타지 문학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 소설의 기독교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톨킨에게 언어는 일생에 걸친 관심사이자 창조의 원천이었다. 웨일스어와 핀란드어에 영감을 얻어 요정어를 만들 정도였다. 또 언어 못지않게 신화와 민담에 관심이 깊었다. 결과적으로 신화와 민담, 고대의 언어들은 그에게 영감과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모험’과 ‘원정’의 차이

‘반지의 제왕’은 모든 힘을 지배할 절대 반지를 갖게 된 호빗 ‘프로도’가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절대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목숨 건 여정에 나서는 이야기이다.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954년이다. 전작 ‘호빗’이 성공을 거두면서 출판사에서 후속작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고, 톨킨은 ‘반지를 돌려주는 여행을 떠나면 되겠다’고 여겼다. ‘호빗’의 시작이 ‘호빗이 무엇이지?’라는 질문이었던 것처럼, ‘반지의 제왕’의 시작은 ‘왜 돌려줘야 하나?’라는 질문이었다.

프로도의 “이 반지가 왜 나에게 왔는가?”란 질문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란 물음으로 읽힌다. ‘반지의 제왕’을 읽다 보면 빌보가 우연히 절대 반지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신비롭게도 절대 반지가 빌보를 발견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간달프는 프로도에게 절대 반지의 섭리적 특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반지가 골룸에게서 떠난 데에는 또 다른 힘이 작용하는 것 같네. 반지를 만든 자의 계획마저 뛰어넘는 또 다른 힘이 작용하는 것으로 짐작이 돼. 쉽게 말하자면 빌보가 반지를 발견하도록 그 주인이 아닌 누군가가 의도했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네가 반지를 가지게 된 것도 누군가의 뜻에 따른 셈이지.”(‘반지의 제왕’ 중)

또 간달프는 프로도에게 ‘모험’과 ‘원정’의 차이점에 관해 이야기한다. 설명하자면 모험이란 그때 일어났고 발생하는 사건이다. 모험은 지루함에서 벗어나려는 갈망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일단 보물이 발견되면 모험이 끝나고 주인공은 어떤 변화 없이 본래의 상태로 돌아온다. 도피주의 문화는 모험을 삶의 보람으로 여긴다. 반면 원정은 자신의 욕구가 아니라 소명으로 시작된다. 프로도는 계속 왜 자신이 이런 ‘끔찍한 의무’를 떠맡아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다. 그가 부름을 받은 이유는 보물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무언가를 잃는 것, 즉 절대 반지를 사우론이 반지를 만들었던 불 속에 던져 녹여 없애는 것이다.

모험과 원정의 차이는 바로 ‘사명’을 깨닫는 데 달려 있다. ‘나에게 이 반지가 왜 왔을까?’ 반지는 삶의 원정을 통해 없애야 할 욕망일 수도 있고 추구해야 할 과업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반지를 발견하는 일은 사명을 발견하는 일이란 것.
 
신화와 영성이 만나면

기독교는 신화적 종교가 아니다. 그래서 현실과 관련 없는 신화적 관점에서 기독교를 설명하거나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전하는 것이 익숙지 않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신화에 열광한다. 그 이유는 현실 속에서 투쟁하며 얻어야 할 이상이 현실 이상으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톨킨의 작품은 신화적 세계관에 젖어 들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신화적 틀을 사용하기에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현실보다 실감나게 표현됐다.

톨킨의 작품은 우리가 악으로부터 돌아서도록 격려하기보다는 악에 과감히 맞서게끔 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전개되는 신화적 이야기는 강력한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신화가 어떻게 복음증거의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톨킨은 작품 배경과 주제 그리고 암묵적인 희망 속에 기독교의 복음을 은은하게 풀어 놓았다. 선과 악의 치열한 전투,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 등은 절대적 진리에 대한 톨킨의 깊은 신앙을 보여준다. ‘반지의 제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덕목 중 ‘자비’만큼 기독교 색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빌보가 사악한 골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프로도가 분노하자 간달프의 입을 통해 작가의 생각이 흘러나온다.

“…골룸을 살려준 빌보의 동정심이 결국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할지도 모른단 말일세. 어쩌면 자네의 목숨까지도 말이야.” 반지의 제왕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핵심적인 기독교적 메시지이다.

톨킨의 판타지 세계는 우리의 현실 세계처럼 선은 보호하고 보전하려는 반면 악은 지배하고 파괴하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들은 겁쟁이처럼 자신만 지키려는 태도를 극복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영웅적인 인물의 모범으로 ‘구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들의 용기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는 가장 위대한 구원을 연상하게 된다.

톨킨은 가톨릭용 성경 번역(Jerusalem Bible) 편찬에 참여한 것 외에는 기독교와 직접 관련된 책을 내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색채를 글 안에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알레고리 형식보다 판타지를 선호했다. 이유에 대해 그는 “독자들 각자의 생각과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베일러대 랠프 우드 교수는 ‘다시 읽는 반지의 제왕’에서 톨킨이 자신의 작품 속에 종교를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심층적 이유는, ‘가운데 땅’이라는 신화적 세상을 종교가 없는 세계로 묘사하면서 독자가 그 작품 속에 은은하게 잠겨 있는 기독교를 분명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가리켜 ‘근본적으로는 종교적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반지의 제왕’에 내포된 종교적 중요성은 어떤 도덕적 원리에서가 아니라 이야기의 줄거리, 등장인물, 이미지들, 논조, 풍경 그리고 관점들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톨킨에게 있어 그리스도인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지닌 존재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간달프와 아라곤, 프로도, 샘 등의 모습을 우리 자신 안에서 구현하면서 ‘작은 예수’가 되라는 부름을 받은 셈이다. 이 땅의 모든 존재는 태어난 목적과 임무가 있다. 절대 반지를 없애러 떠나는 원정대의 여정에 성공보다 실패의 가능성이 짙었지만 그들은 떠났다. 빌보가 길을 떠나기 전에 부른 노래말처럼 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다음엔 어디로 갈지 몰라도 우리는 사명을 위한 여정을 떠나야 한다. “길은 끝없이 이어지네/문을 나서면 내리막길/길은 저 멀리 아득히 끝 간데없고/이제 나는 힘닿는 데까지 걸어야 하리/팍팍한 두 다리를 끌고/더 큰 길이 보일 때까지/많은 길과 많은 일을 만나는 곳으로/ 다음엔 어딜까? 알 수 없다네.” (‘반지의 제왕’ 중)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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