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영혼의 호흡으로 간구하라… 마음 문 열고 들어오시리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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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노르웨이의 신학자 오 할레스비(Ole Hallesby·아래 사진, 1879~1961)는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숨결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도는 말로 표현하기 전, 영혼 속에 존재하며 기도의 언어가 입술 밖으로 나온 후에도 영혼 속에 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보다 깊은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메말라 시들어가는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는 역할을 한다.

20세기 노르웨이의 영적 지도자로 큰 영향을 미쳤던 할레스비는 신학과 삶이 일치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는 나치정권에 항거하다 2년 동안 수감되기도 했다. 또한 메니게츠파쿨테스 신학교 교수로 봉직하며, 사도신경의 진리를 부정하는 자유주의 이념에 대항해 성서적 신앙을 위한 강의와 저술에 전념했다. 신학, 윤리학, 경건생활에 이르는 60여권의 저서를 통해 참된 신앙과 경건의 회복을 강조했다. 대표작 ‘기도’를 비롯해 ‘나는 왜 그리스도인인가’ ‘주님의 날개 아래’ 등이 국내에 번역 출판됐다. 특히 전 세계 그리스도인이 애독하는 ‘기도’는 기도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기도가 어렵지 않으며,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은혜의 수단이자 특권임을 깨닫게 한다.
 
무력감은 기도의 원동력

할레스비는 저서 ‘기도’에서 ‘무력감’이 그리스도인의 최대 무기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한다. 그러나 그 말에 곧 수긍하게 된다. “당신이 무력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바로 당신의 최고의 기도입니다. 당신의 마음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당신이 말로 드리는 모든 호소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전달됩니다. 당신이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은 즉시 당신의 무력감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응답하십니다.”(‘기도’ 중)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야말로 기도의 진정한 비결이자 원동력이란 것이다. 무력감이 하나님의 자애로운 마음을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호소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무력감을 기꺼이 인정하고,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에 온전히 의지할 때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신다.

복음서를 깊이 연구하면서 회심한 할레스비는 ‘기도’에서 자신이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 법한 장면을 사례로 든다. 마가복음 2장에 등장하는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 2:3~5)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예수님이 권위 있는 말씀으로 친구를 낫게 해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고 목소리조차 낼 수 없던 중풍병자의 소리 없는 기도를 이미 듣고 응답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다. 마치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돌보심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듯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도록 맡기는 것이다.

할레스비는 이 무력감이 믿음과 연합할 때 기도를 낳는다고 말한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주님께 나아간다면 우리에겐 충분한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믿음을 갖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쓸 필요 없고, 오직 내 믿음이 얼마나 약한지 주님께 아뢰면 된다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부성은 이렇듯 뜨거운데 마태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너무나 매정하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는 가나안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냉혹하게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 할레스비는 “주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이 지극히 크셔서, 우리가 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주길 원하신다”고 말한다. 가나안 여인이 물러나지 않고 겸손히 “자녀들이 먹는 떡을 일부러 떼어서 개들에게 줄 필요는 없습니다. 개들은 주인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간구를 들어주셨다. 주님은 우리 자신의 참된 상태를 깨닫길 원하신다. 여인은 주님이 원하셨던 태도, 즉 자신이 보잘것없는 무기력한 존재란 것을 깨달았다.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할레스비는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목적으로 제정됨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며 작은 일이든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고 말한다. “이 일이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면 나의 기도를 들으셔서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이 일이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나를 이 곤경 속에 그대로 두십시오. 다만 내가 처한 이 상황에서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드릴 수 있는 능력을 내게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라도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차례나 간구했지만 응답받지 못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사역에 방해되지 않게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의 진정한 목적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에도 받아들여 지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할레스비는 육체의 가시를 그대로 두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 영화롭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가시로 인해 계속 겸비한 마음을 유지해서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도의 싸움을 통해 바울이 깨달은 큰 비밀은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였다.

할레스비는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란 성경 구절만큼 기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말씀은 없다고 확신한다. 그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오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의 기도는 주 예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우리를 움직여서 기도하게 합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겠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우리가 할 일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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