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순흥 (1)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있다” 주님 말씀 일찍 깨달아

장순흥 한동대 총장이 1955년 모친 이정송 권사와 돌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지난 40년을 뒤돌아보니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과학자 교육자 행정가로서 달려온 삶을 살았다. 1982년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교수로 부임해 30여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 기술 자립에 기여했으며, 2014년부턴 하나님의 대학인 한동대 총장을 맡아 글로벌 기독 인재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나는 1954년 5월 6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태어났다.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유복한 가정이었다. 이북 출신인 아버지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영어도 잘하고 학구적인 분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대령이었는데 얼마 후 장군으로 진급하셨다.

육사 3기였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보다 1기 후배였다. 소장 진급 후 1969년 예편했다. 아버지가 사단장 시절 강원도 철원 본부를 놀러 갔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경북 김천 출신의 인텔리였다. 김천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약학을 전공했는데 기차 여행을 하다가 두 분이 만났다고 했다.

우리 집은 필동 대한극장 근처에 있었는데, 학교 진학에 맞춰 종로구 사직동으로 옮겼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남들에게 무엇을 주는 것을 좋아했다. 서울 덕수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순흥아, 나 사탕 좀 줘.” “어, 그래. 여기 있어.” 나는 누가 달라고 하면 거절을 못 했다. 친구들에게 뭐든지 퍼주다 보니 항상 돈이 모자랐다. 무엇이든 주면 기분이 좋았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라는 주님의 말씀을 일찍부터 깨달은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누나의 산수 문제를 풀어주기로 한 것이다. “누나, 친구들한테 사탕 사주려면 돈이 좀 필요한데. 얼마 좀 줄래?” “그럼 네가 내 수학 숙제해줘. 그럼 100원 줄게.”

누나가 돈을 준다는 말에 두 학년 위인 누나의 숙제를 해줬다.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나의 수학 숙제는 늘 내 몫이었다. 자연스럽게 수학 실력이 부쩍 늘었다. 그렇다고 과외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논리적인 것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말씀을 많이 하지는 않으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셨는데 늘 손에 책이 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 옆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일찍 일어나고 책 읽는 습관을 배운 것 같다.

덕수초등학교에선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경복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늘 잘 할 수 있다며 격려해 주셨다. 어머니도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5남매는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배어 있어서 그런지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

교회는 덕수교회에 출석했다. 지금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 자리에 있었다. 얼마 후 성북동으로 이전했는데, 당시는 최거덕 목사님이 담임을 맡고 있었다. 지금은 원로목사가 되신 손인웅 목사님은 그때 전도사님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지만 그리 열심을 내지는 않았다.

당시 경복고는 경복중을 졸업한 480명을 뽑고 다른 중학교 출신 240명을 뽑았다. 1969년 경복고에 무시험으로 입학하고 1970년 겨울 방학 때 인생의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다.

약력=서울대 핵공학 학사, 미국 MIT대학원 핵공학 석·박사,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교수, 카이스트 대외부총장, 한국원자력학회장,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제34회 인촌상 수상, 현 한동대 총장.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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