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분류  >  미분류

[And 건강] 희귀·난치암 환자 생존율 끌어올리기 공공 체계 만든다

국립암센터 의료진이 희귀암인 침샘암 환자를 대상으로 양성자 치료를 시연하고 있다. 수소 원자 핵을 구성하는 소립자인 양성자 빔을 쏘아 암 조직을 파괴하는 방식이다. 기존 X선 이용 방사선 치료 시 발생하는 부작용이 거의 없어 희귀암 치료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국립암센터 제공




김영우 국립암센터 연구소장


육종암·백혈병·폐암 등 극복 위해 국립암센터·질병청 등 참여시켜
국가 차원 통합 연구 플랫폼 구축… 공공 임상시험 네트워크 갖추기로

인천에 사는 A씨(60)는 지난 6월 허벅지 ‘육종암’을 진단받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허벅지가 자꾸 아프고 부풀어 올라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이후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류마티스내과, 외과 등 6곳 넘는 진료과를 전전했지만 병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육종암은 뼈나 근육, 지방, 신경, 혈관 등에 생기는 매우 드문 암이다. A씨는 병원을 옮길 때마다 고가의 MRI를 다시 찍었고 퇴행성 척추질환 등 엉뚱한 진단으로 불필요한 스테로이드 주사, 물리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 사이 허벅지의 혹은 계속 커졌고 몸무게는 17㎏이나 빠졌다.

가까스로 육종암으로 판명돼 허벅지에서 60㎝까지 커진 종양을 떼낸 A씨는 “의사들도 육종암 환자를 잘 보질 못해서 모르는 것 같았다”면서 “의사들끼리 물어보고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희귀암 환자가 병을 키우는 일이 훨씬 줄 것 같다”고 말했다.

희귀암 환자들은 A씨처럼 최종 병명을 확인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게 다반사다. 희귀암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의사가 많지 않고 지방에 사는 환자들은 진단과 치료를 위해 서울 등 수도권의 대형병원까지 직접 발걸음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희귀암은 연간 인구 10만명 당 6명 미만으로 발생하고 그 중 5년 생존율 70% 미만인 암을 말한다. 입술·구강·인두암, 백혈병, 다발성골수종, 뇌·중추신경계암, 골근육종, 안종양(눈암), 소아암, 식도암 등이 해당된다.

소외된 희귀·난치암

중앙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가장 최근인 2018년에 1만4610명(전체 암 발생의 6%)의 희귀암 환자가 신규로 발생했다. 의료현장에선 희귀암을 3가지가 부족하다는 의미의 ‘3L(Lack)’로 표현한다. 먼저 적절한 의료 수단의 부족(Lack of medical tools)이다. 희귀암은 위·간암 등 호발암과 달리 건강검진을 통한 조기 발견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암의 초기 단계에서 치료 받기도 어렵다. 표준 치료법이 정립돼 있지 않아 치료법 선택에도 제약이 많다.

낮은 의료 접근성(Low medical accessibility)도 문제다. 희귀암을 전공한 전문의 수가 적다 보니 수도권 의료기관에 편중돼 있고 지방 환자들은 가까운 곳에서 치료받기 힘들다. 또 환자들이 비싼 수입 항암제를 써야 할 때가 많은데 치료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특히 진행성 희귀암인 경우 항암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 참여가 절실한 경우가 많지만 임상시험 수 자체가 적을 뿐 아니라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병원 간 정보 교환이 가능한 네트워크 시스템이 없어 환자들로선 적절한 정보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아울러 ‘낮은 환자 복지(Low patient welfare)’ 문제도 제기된다. 희귀암 치료 후 필요한 재활 정보가 부족하고 사회복귀 프로그램도 미흡한 실정이다. 희귀암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 차원의 공적 책임이 꾸준히 강조돼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이에 부응해 ‘희귀·난치암 극복 국민 희망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그간 소홀했던 희귀·난치암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통합(개방형) 연구자원 플랫폼’을 만들고 전국 단위의 ‘공공 임상시험 네트워크’를 구축해 암 원인 및 기전 연구에서 예방·진단·치료기술 개발 및 상용화, 맞춤형 임상시험 기회 부여, 치료 후 돌봄 제공까지 전주기적 관리를 통해 생존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참여해 2023년부터 9년간 총 9500억원(국고 9000억원, 민간 500억원)을 투입하는 대형 연구개발(R&D)사업이다. 지난 27일 국가R&D를 총괄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 심사를 시작으로 다음 달부터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검토를 거쳐 내년 상반기에 최종 확정된다.

주목되는 것은 희귀암 만이 아니라 ‘난치암’도 사업 대상에 넣었다는 점이다. 난치암은 희귀암이 아니면서 5년 생존율이 50% 아래로 치료가 어려운 암과 재발 혹은 전이암이 포함된다. 호발암 중에서도 치료가 어려워 사망률이 높은 폐암(소세포암), 췌장암, 담낭·담도암, 간암, 난소암이 해당된다. 2018년 기준 난치암은 5만9154명이 새로 발생해 전체 암 발생자의 24%를 차지했다. 다시 말해 국내에선 해마다 7만여명(전체 암의 30%)의 희귀·난치암 환자가 발생하는 셈이다.

김영우 국립암센터 연구소장은 27일 “우리나라 전체 암 5년 생존율은 70%를 넘었다(2014~18년 70.3%). 건강검진이나 암검진 등에 의한 조기 발견과 치료율이 높아진 덕분으로 10년 전 40%대에서 가파르게 상승했다. 하지만 근래에도 70%대 초반에서 머물고 있는데, 바로 희귀·난치암 때문이다. 이들 암의 치료율을 높여야 추가 상승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주요 희귀·난치암의 5년 생존율은 조금씩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40% 이하에 머물고 있다. 췌장암 12.6%, 담낭·담도암 28.8%, 폐암 32.4%, 간암 37%, 식도암 39.5% 등이다.

김 소장은 “지난해 암 관련 전체 국가 R&D투자가 7000억원이지만 희귀·난치암은 839억원(간암, 폐암 포함 시 2250억원)에 불과하고 그나마 간·폐암 등 ‘다빈도 난치암’에 집중되는 등 암종 간 투자 편차가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희귀·난치암 R&D의 60~70%는 개인이나 기초연구 과제에 해당돼 상호 연계나 실용화 성과 창출이 저조하다. 희귀·난치암 연구에 필수적인 연구자원(환자 유전체 및 단백체, 임상 정보 등)의 체계적 수집과 활용, 공유를 통해 지속 가능한 연구기반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어디서나 신약 임상시험 쉽게 참여

국가 희귀·난치암 연구자원 통합 플랫폼과 공공 임상시험 네트워크(중앙임상시험센터와 10여개 지역거점센터)가 구축되면 전국의 환자들을 등록하고 각 의료기관이 갖고 있는 환자들의 유전체 및 단백체 정보를 통해 그에 맞는 치료제나 항암 신약을 매치해 찾아낼 수 있다. 이를 위해 대학병원 등 암 치료기관과 항암제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는 제약사, 바이오벤처 등의 협력이 절대 필요하다.

김 소장은 “지방 환자가 지역거점센터에서 신속하게 항암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해 치료 기회를 갖게 되면 굳이 서울 큰 병원까지 올 필요가 없어 암 환자 쏠림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또 정부가 올 3월 공개한 4차 암관리종합계획(2021~25년)에서 제시한 ‘언제 어디서나 양질의 암 치료와 돌봄이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방향과도 맞는다”고 말했다. 이어 “희귀·난치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의 확대를 통해 현재 70% 초반의 5년 생존율을 2031~35년 80%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