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누리는 성적 친밀함의 의미와 기능 알고 교육하라

김지연 한국가족보건협회 대표가 지난 10일 대전 유성구 높은뜻감리교회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준회원 과정고시를 위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성의 지평이 결혼을 통해 열린다는 것을 자녀에게 교육하려면 성매매 금지 교육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히 13:4)고 분명하게 말씀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결혼 외의 경로로 성을 공유하는 것을 간음이라 보며 금하고 있다.

이미 혼외 성행위를 통해 간음으로 괴로워하는 자녀가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겐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함 받는 삶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지도해야 한다. 또한 성경이 인간의 성적인 욕구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성행위를 금지하는 극단적 금욕주의를 강요한다는 오해가 없도록 훈육해야 한다.

기독 양육자로서 인지하고 있어야 할 성관계의 성경적 의미는 무엇일까. 첫 번째 부부간의 성관계는 생육, 번성, 충만, 정복과 다스림의 길을 걸으라는 하나님의 문화 명령을 준행하는 첫 단추라는 것이다. 즉 부부간의 성관계를 통해 자녀를 잉태하고 출산·양육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는 것이다. 결혼을 통해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며 생육, 번성, 충만의 지평을 여는 것이다.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준행하는 통로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이 시작점이라는 말이다.

두 번째 부부간의 성은 희락을 추구하는 정당한 행위로도 인정받는다. 성경이 부부간에 임신만을 위한 성행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부부의 동침은 서로의 희락과 기쁨을 나누기 위한 행위다. 음욕의 죄, 간음을 저지르지 않기 위한 요소로 부부간의 희락적 성관계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성경은 인간의 성적 욕구나 성관계 그 자체를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음욕의 죄를 꾸짖는다. 성 어거스틴은 생명 잉태의 목적이 아니라면 부부간에도 성관계를 피하라는 금욕주의를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사조는 종교 개혁 이후 상당히 사라졌다. 즉 부부간의 기쁨이 되는 성행위를 통해 음욕의 죄를 오히려 멀리하고 더 거룩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해석을 성경적 결혼관으로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가서는 혼인한 두 배우자의 첫날밤을 기쁨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렇듯 성경은 부부가 추구하는 성적 기쁨을 인정한다. 사도 바울 역시 부부가 됐다면 각방을 쓰지 말라고 강조했다. 즉 부부간의 성적 냉담함이 오히려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부부간의 성관계가 가지는 세 번째 의미는 부부만이 성적 친밀함을 공유함으로써 배타적 충성을 훈련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우리 인간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사랑하셨으며 구원을 위해 이 땅 가운데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이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실 만큼 우리를 철저히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천하 만물보다 한 사람의 생명이 귀하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충성과 사랑을 요구하신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말 것을 명하셨다. 성경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한다. 하나님 이외의 존재를 우상으로 삼아 숭배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라고 하셨다. 이런 배타적 충성의 요구는 부부간에 서로를 향한 배타적 사랑과 매우 닮았다.

에스겔 16장은 우상숭배하는 히브리인을 간음하는 아내, 즉 창녀의 행위를 하는 왕후에 비유하고 있다. 왕이신 하나님이 아내로 삼은 왕후가 방자한 창녀가 된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호세아에는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아내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두면 안 된다. 이처럼 남편과 아내도 서로 다른 간음의 대상을 두지 말고 성적인 친밀감을 배우자끼리만 나눠야 한다.

“365일 중 나는 아내(남편)인 당신과 동침하고 1년 중 딱 이틀만 다른 애인과 동침해. 그러니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야.” 이런 배우자에게 어떤 사람이 ‘정말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군요’라며 기뻐하겠는가. 그 이틀 때문에 남편, 아내는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은 바람 핀 남편, 아내가 된다.

마찬가지로 “1년 중 저는 363일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딱 1년 중 이틀만 무당 박수를 찾아가 경배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니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죠”라고 말할 수 없다. 그 나머지 이틀조차 마땅히 하나님께 바쳐야 함을 부부간의 관계에 비유로 알게 하시는 것이다.

부부간에만 허락된 성적 친밀함의 배타성은 신부 된 우리가 오로지 남편 된 하나님만 경배해야 함을 예표하고 있다. 그 충성과 사랑을 다른 우상에 내어줘서는 안 된다. 그래서 부부관계는 일평생 자신의 배우자에게만 충성과 사랑을 바치고 거룩한 군사가 되는 사관학교인 것이다.

한국가족보건협회 김지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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