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죄인입니다”… 한경직 목사의 고백 [우성규 기자의 걷기 묵상]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의 녹음 속에 모습을 드러낸 우거처. 한경직 목사가 영락교회 은퇴 후 20여년을 머물던 곳이다.






시작은 서울 지하철 5호선 마천역이다. 토요일 아침 독자와 만나는 이 칼럼은 ‘BMW’를 지향한다. 기후위기 시대 화석연료를 써야 하는 자동차는 집에 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B) 메트로(M) 워킹(W)을 선택한다. 체력에 자신이 있다면 버스 대신 자전거 대여 시스템 따릉이를 이용해도 좋다. 한강에서 올림픽공원과 성내천으로 이어지는 시냇가 자전거 전용도로를 거쳐 마천역 인근에 내리면 된다. 바이크 메트로 워킹의 명품 BMW는 옵션이다.

마천역 2번 출구로 나와 학암천 방향 남한산성 등산로를 찾아간다.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목재데크 안내 표지판이 보이면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푸른 숲과 맑은 계곡이 속살을 드러내는 곳에서 ‘산할아버지’ 흉상을 만난다. “여기에 길과 다리와 층계를 3개씩이나 손수 만드시고 수많은 벚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를 비롯한 관상수를 손수 심고 가꾸시어 보시는 대로 정원 같은 등산로를 만드시다 고인이 되셨습니다.” 동상의 주인공도 동상을 세운 이도 무명으로 남았다. 다음세대를 위해 오늘 한 그루 나무를 심는 정성과 지혜를 생각한다.

동상을 지나면 본격적인 계단이다. 계단은 아이들도 쉽게 골짜기를 오르도록 경사지 위에 설치됐지만, 중간쯤 가면 숨이 차오르기 마련이다. 문득 영화 미션의 로버트 드 니로가 생각난다. 원주민을 사냥해 노예로 파는 악당이자 살인도 서슴지 않은 용병 출신의 멘도사 역할 드 니로는 속죄를 위해 이구아수 폭포를 거슬러 올라간다. 자신의 갑옷과 칼 등 살인 무기를 끌고 진흙 범벅의 빈사 상태에서 폭포 위 과라니족을 만난 멘도사. 과라니족은 칼을 들어 그의 목을 치는 대신 살인 무기가 담긴 망태의 줄을 끊고 그를 용서한다. 198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는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 선율을 배경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회와 회개, 그 이후의 환희를 그려내고 있다.

속죄의 계단 1200여개를 다 오르면 남한산성 성벽이 나온다. 뒤로 돌아서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경기도 하남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한눈에 감상한다. 공중을 나는 새나 볼 수 있는 버드아이뷰의 조망 하나만으로도 계단을 오를 가치가 있다. 해발 497m 청량산의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좁은 문’인 우익문을 거쳐 산성 안으로 들어간다. 국청사를 지나 잠시 내려가면 짙은 녹음 속에 자리한 한경직(1902~2000) 목사의 우거처가 소박한 모습을 드러낸다.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였던 작가 조성기 산울교회 목사는 저서 ‘한경직 평전’에서 “한 목사는 한 교회를 섬긴 목회자라기보다 한 시대를 섬긴 정신적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영락교회를 넘어 한국교회 전체를 섬긴 그는 일제 강점기, 6·25전쟁, 군사독재와 민주화 및 세계화를 경험했다. 1973년 원로목사 추대 이후 남한산성의 방 두 칸짜리 우거처에 머물며 그리스도의 청빈과 사랑을 본받으려 애썼다.

한 목사는 92년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았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 마더 테레사 등이 수상한 최고 영예다. 한국교회 주요 목회자들이 서울 63빌딩에 모여 템플턴상 수상 축하예배를 드리는 그 순간, 인생의 최고 정점에서 한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선 저는 하나님 앞에서 또 여러분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저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전 신사참배도 한 사람입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경건과 절제의 평생을 산 한 목사를 통해 오늘날 한국교회의 난제들을 풀 열쇠를 발견한다. 속죄의 기도를 드리며 오늘의 걷기를 마무리한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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