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플렉스 시즌2] “남과 경쟁하기보다 받은 달란트 키우는 게 행복의 길”

주대준 장로가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사무실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풀어놓으며 이 시대 청년들에게 조언을 전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경남 산청군 지리산 자락에 살던 열두 살 아이는 1965년 부모를 잃고 친척 집과 고아원을 전전했다. 그를 보며 안타까움에 혀를 찼을 어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는 ‘대단한 집안의 귀공자’처럼 왠지 모를 당돌함과 자신감에 차 있었다.

육군 장교가 된 그는 우연히 훔쳐보던 담벼락 너머가 청와대란 걸 알게 된 후 성경 속 요셉이 떠올랐다. 노예로 살던 요셉도 국무총리까지 올랐는데 ‘왜 내가 못해’란 치기 어린 다짐과 꿈이 마음속에 움텄다. 꿈을 품고 노력한 지 10년 만인 89년 청와대 전산실 프로그램개발팀장으로 발탁돼 그의 꿈은 현실이 됐다. 이후 대통령경호실 2인자인 경호차장까지 올랐다. 20년간 다섯 명의 대통령을 모시며 경호실 창립 50년 역사 최초로 정년퇴직한 사람이 됐다.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부회장 주대준(68)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 이야기다. 그를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전 살펴본 그의 이력은 다양했다. 정년퇴직 후엔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로 들어가 대외부총장까지 올랐고, 선린대 총장을 거쳐 CTS인터내셔널 회장도 맡았다. 월드비전 이사를 지냈고 지금은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이사장으로도 있다.

그에게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의 원천을 묻자 “어떤 환경에서도 희망을 바라보면서 꿈을 품고 도전했기에 가능했던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다”란 어찌 보면 상투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장 자연스러운 고백이었다.

하나님은 유교와 불교, 무속신앙 등 각종 종교를 섭렵한 가정에서 태어난 열 살 남짓의 그를 부친의 사업실패를 계기로 멀리 경남 거제도까지 보내시며 만나주셨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난생처음 간 교회 예배당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됐고, 역경의 연속이었던 당시 삶은 곧 영적으로 성장하는 시간이 됐다”고 고백했다.

현재 쓰는 이메일 주소에도 ‘요셉’이 들어갈 만큼 유년 시절 알게 된 성경 속 요셉의 삶은 인생의 이정표가 됐다. 고아원에서 생활하며 초·중학교를 겨우 마칠 때에도, 낮엔 일하고 저녁엔 야간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그는 새벽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고, 하나님은 그에게 요셉에게 주셨던 꿈을 보여주시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구미 전자공단 건설현장에서 막노동할 때였다. 적어도 뭘 짓는지는 알아야겠다 싶었다. 그땐 몰랐다. 막연하게 알게 된 ‘전산’ ‘전자’가 훗날 그가 공학박사가 되는 시초가 될 줄은.

그는 “막노동을 하면서도 그저 막연하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얼 하며, 왜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입대 영장을 받고 진로를 고민하며 기도하던 그에게 하나님은 ‘네 인생의 운전대를 내게 맡겨라. 내가 친히 운행해 줄 테니 믿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셨다.

그 길로 3사관학교에 입교해 전산 장교가 됐다. 하지만 기초가 부족했던 탓일까. 프로그램 교육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았다. 보수교육을 받으러 당시 청와대 입구에 있는 정부전자계산소(GCC)로 갔다. 쉬는 시간 우연히 걷던 길 너머로 처음 바라본 청와대가 그의 가슴에 꽂혔다. 그는 속으로 ‘저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고 믿음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10년 후 그를 정말로 그곳으로 이끄셨다.

그는 “마음속으로 ‘난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받은 청와대 선교사다’라고 선포하며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각오로 근무를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소명의식으로 만 55세로 정년을 마칠 때까지 ‘예수’란 이름을 입 밖으로도 내기 힘든 청와대에 기독신우회까지 만들었다. 상관의 이취임 환송 행사보다 신우회 예배를 먼저 챙기느라 상관에게 멱살을 잡혔을 때도 속으로 ‘그를 용서해 달라’며 기도했던 그다. 술잔을 거부하는 그의 올곧은 신앙을 보고 교회에 다니게 된 상관도 있었다.

청와대에 과학적 경호·경비 시스템을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은 그는 퇴직 후 ‘전관예우’로 한 공기업 기관장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소신으로 이를 거부했다. 이런 그를 하나님은 카이스트 교수로 이끄셨고, 부총장의 자리까지 올려주셨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은 꿈이 인성과 영성, 지성을 겸비한 다음세대 리더를 한국교회가 양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맞춰져 있다고 말할 정도로 다음세대를 향한 관심이 많다. 최근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경쟁력을 갖추는 교육 비법을 담아 책 ‘캠퍼스아웃’(미래사)도 펴냈다. 그런 그가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뭘까.

인터뷰 내내 막힘없이 대답하던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청년들의 좌절과 안타까운 현실을 접하며 기성세대로서 반성도 하게 된다”면서 “청년들이 머리가 아닌 가슴이 원하는 삶, 타인과 경쟁하기보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소명과 달란트를 통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가는 것에서 진정한 성공을 찾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 사는 인생, 한 번쯤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열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삶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꼭 만나봤으면 한다”는 진심도 전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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