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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의료비 혜택 받으려면 신약 끊어라… 중증 건선환자 두번 울린다





재등록하려면 효과 좋은 생물학적 약
치료 중단하고 상태 악화돼야 가능
재등록 기준 불공정하고 가혹 지적

피부질환인 중증 건선으로 7년 넘게 신약인 ‘생물학적 제제’ 치료를 받고 있는 A씨(45)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간 치료비 부담을 10%로 줄여주는 산정특례 혜택을 받아왔는데, 오는 6월부터 5년마다 돌아오는 산정특례 재등록을 위해선 치료를 일정 기간 끊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4년 전 중증 건선의 산정특례 적용 전에 이미 생물학적 의약품 치료를 받았던 A씨는 연간 1000만원 넘는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 중도 포기했던 아픈 경험이 있었다.

그때 약을 끊은 후 피부 발진과 인설(하얀 비늘)이 온 몸을 뒤덮어 크게 고생했고 산정특례 적용 후엔 부담이 크게 줄어 치료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등록을 하려면 효과 좋은 생물학적 약 치료를 중단하고 이전에 제대로 듣지 않던 치료를 다시 받아야 한다니 A씨는 당혹스럽기만 하다.

건선은 아토피피부염과 류머티즘성관절염, 강직성척추염, 크론병 등과 같은 염증성 면역질환으로 피부에 붉은 발진과 인설이 반복해 생기는 병이다. 국내 인구 1%인 약 50만명이 건선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나날이 증가 추세에 있다. 사회활동을 왕성히 해야 하는 20·30대에 자주 발생하고, 평생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 다행히 근래 활발히 개발되는 생물학적 주사제로 치료하면서 정상적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생물학적 제제는 살아있는 생물체 유래 성분을 이용하거나 생물체 내에서 만든 물질을 함유한 약으로, 인체의 면역계를 건드려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원리다. 한 환자는 “3~6개월 쓰면 피부 염증이나 비늘이 80~85% 감소하는 등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수 있다. 피부가 깨끗해진다”고 말했다.

다만 고가의 약이어서 환자 요구와 의료진의 노력으로 2017년 6월부터 ‘중증 보통 건선’이라는 질병코드를 새롭게 만들어 치료비를 경감해 주는 산정특례 대상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산정특례 혜택을 계속 받기 위한 재등록 기준이 다른 질환에 비해 불공정하고 가혹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중증 난치질환 산정특례는 심장 및 뇌혈관질환(30일)을 빼고 5년마다 재등록 절차를 밟아야 한다. 현재 건선과 아토피피부염 등 208개 질환이 지정돼 있다. 산정특례로 지정되면 입원, 외래진료, 가정간호서비스 등에서 의료비의 10%만 본인부담하면 된다.

3일 한국건선협회와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중증 건선 환자의 산정특례 재등록을 위해선 등록기간 만료 1년 내에 기존 광선 치료(빛을 쪼여 피부 염증 치료)와 면역억제제 치료를 합쳐 3개월간 받고 효과가 없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생물학적 약을 끊고 이들 치료제만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건선협회 김성기 대표는 “치료 효과가 좋아서 중단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재등록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약을 끊고 이전에 실패를 경험한 방법들로 다시 회귀해 치료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2017년 6월 산정특례 적용 초창기에 등록한 환자들은 5년이 되는 내년 6월쯤 재등록이 필요하다. 이때 그보다 1년 전, 즉 올해 6월쯤부터는 재등록을 위해 약을 끊고 기존 치료법을 쓰다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확인해야 내년 재등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김 대표는 “산정특례를 받기 위해 잘 관리되고 있는 건강상태를 다시 역행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산정특례가 되는 다른 염증성 면역질환에서도 이런 조건은 볼 수 없어 부당하고 가혹한 처사다. 이 부분은 의료진도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

박혜진 인제의대 일산백병원 피부과 교수는 “당장 6월부터 1년 안에 일정 기간 약을 끊어야 하는데 그로 인해 바로 상태가 나빠지진 않겠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안 좋아지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면서 “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약을 끊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환자들의 문제 제기에 건강보험공단은 지난달 23일 첫 전문가회의를 열고 재등록 기준인 ‘치료 중단’에 대해 검토에 들어갔다. 다만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해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단에 따르면 중증 건선 산정특례 등록자는 2017년 1078명, 2018년 1959명, 2019년 3180명, 2020년 4476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최근 2년간 연평균 51.5% 증가했다. 중증 건선 진료 환자도 2016년 2만542명, 2017년 1만7671명이었는데 산정특례 적용 후 2018년 2074명으로 줄었다가 2019년 3217명, 2020년 4538명으로 다시 증가했다. 건보 급여비 또한 2016년 53억원, 2017년 56억원 수준에서 산정특례 후 2018년 151억원, 2019년 264억원, 2020년 385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공단 관계자는 “중증 건선의 경우 20대부터 산정특례 대상으로 누적되면 건강보험에 부담이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환자들의 요구와 문제를 인지한 만큼 재등록 기준 조정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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