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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차마 잊히지 않는 일들



퇴락한 옛집을 바라본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거의 60년 저편에서 형제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가난하지만 그리운 시간이다. 식구들이 다 떠난 마당 가에는 갓꽃 좁쌀냉이 냉이 광대나물 제비꽃 등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름날 헤엄치며 놀던 논배미 옆 물웅덩이는 세월을 못 이긴 채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밭두둑의 머위는 옛날과 같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옛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어느 해인가 바람에 넘어졌던 밭 가의 참죽나무는 넘어진 상태 그대로 참죽순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고향을 떠난 이후에도 참죽나무를 그리워하셨던 부모님의 얼굴도 슬쩍 얼비쳤다.

배꽃이 난분분 날리는 길옆 밭은 수박 농사를 짓던 곳이다. 그 밭 귀퉁이에 아버지께서 정성껏 만들었던 원두막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뒷산이 사라지면서 무너진 담장의 흔적 위에 서서 장독대가 놓여 있던 뒤란을 살폈다. 안방에서 뒤란 쪽으로 난 여닫이문에 눈길이 머무는 순간, 비 오는 날이면 언제나 그 문을 열어젖히고 추녀 끝에 맺혔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세거나 장독 위로 떨어져 퍼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던 숫접은 한 어린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왜 옆집 친구 아무개가 아니고 나인가?”, “내가 그 집에 태어났다면 나처럼 생각할까, 아무개처럼 생각할까?”라는 제법 철학적인 질문에 골똘했던 아이.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세월의 강물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다. 생각해보면 삶이 온통 빚이다. 우리 내면에는 사는 동안 인연을 맺었던 그 수많은 사람의 흔적이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다. 아름다운 기억도 있고, 지우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억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오늘 우리의 자아 정체성을 만들었다. 사람만 기여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마냥 무심히 대하며 살았던 풀꽃들이며, 나뭇잎 사이로 비치던 햇빛, 무한한 세계를 꿈꾸게 했던 달빛과 별빛조차 우리 정서의 원형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마음에 후림불이 당겨진 것처럼 허둥거리느라 잊고 살았지만, 정신은 풍요로웠던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음이 참 고맙다.

내가 빚진 자임을 자각하는 순간 시원의 아름다움이 삶에 유입된다. 삶이 고마움임을 깊이 느낄 때 우리 내면의 날카로운 것들이 허물어지고, 다른 이들이 다가와 편히 머물 수 있는 여백이 생긴다. 빚진 자 의식은 요구받음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부른다. 우리가 심지 않은 것을 거두어 누리며 사는 게 인생이라면, 우리 또한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해 아름다움의 씨를 뿌려야 한다. 그것이 사람 사는 도리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기 삶을 바친 이들 덕분에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것을 잊는 순간 참된 사람됨의 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따뜻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프다는 말조차 사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있다. 개인적 아픔도 있지만 사회적 아픔도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7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때 국민들은 깊은 충격을 받았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며 고통과 공포의 시간을 보냈을 이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에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국가의 부재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이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대부분 사람이 동의했다. 그리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참사의 원인도 책임자도 밝혀지지 않았다. 세월호를 망각의 강물에 떠내려 보내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 문제를 흐지부지 얼버무린다면 우리 사회는 결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지금은 결단의 시간이다.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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