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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휴대폰에 부모님이 없다



봄옷을 사려고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고 있다. 실물을 볼 수 없는 온라인 쇼핑은 일종의 복권적인 성질을 가진다. 택배 상자를 열어젖히는 순간 당첨과 꽝이 판별되는 것이다. 나는 당첨률을 높이기 위해 후기를 탐독한다. 무대 조명 아래 틀이 좋은 모델에게 입혀 찍은 판매자의 사진은 그저 참고용이다. 알짜 정보는 오히려 먼지 낀 거울에 비춘 자신을 대충 찍어 올린 후기 사진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게 내가 그 옷을 걸쳤을 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 쇼핑몰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상의를 찾아낸 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생각보다 타이트하지만 맘에 들어요’ ‘예쁘네요 많이 파세요’ ‘깔별로 쟁이려고요’ 같은 평범한 후기들 틈에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바로 이런 글귀였다. ‘엄마 선물로 샀는데 좋아하셨어요. 잘 어울리고 무척 아름다웠어요.’

내 눈에 걸린 구절은 ‘아름다웠어요’였다. 흔히 부모님을 묘사할 때 쓰는 표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엄마 아빠의 외양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한다고 생각하면 젊어 보인다거나, 인상이 좋으시다거나, 자세가 꼿꼿하시다거나 하는 류의 말만 떠올랐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훌륭한 심미안으로 조형된 거장의 작품 내지는 혼을 압도하는 대자연에나 쓰는 말이지 부모님께 바치기엔 다소 머쓱한 말이었다. 후기를 쓴 이는 어떻게 가족에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아름답다’는 말을 사전에서 더듬어 보니 ‘감각에 만족을 준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었다. 감각의 만족은 얄궂은 데가 있다. 만족에는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자극이란 비슷한 수준이 이어지면 역치가 올라가 더는 감지되지 않는다. 익숙한 데서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그것은 새삼스러워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세상천지 부모님만큼 덜 새삼스러운 분들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태초에 내가 접한 첫 번째 인류이자 일평생 가장 많이 들여다봤을 얼굴. 낯섦과 생경함의 저 반대쪽 끝단에 있는 엄마의 얼굴, 아빠의 얼굴.

우리는 이 얼굴들이 얼마나 지루하고 밋밋한지 사진이나 영상으로 잘 기록하지 않는다. 나만 해도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보면 막 피기 시작한 봄꽃, 근사하게 플레이팅된 음식, 힙하다고 이름난 카페의 정경 따위만 나오지 아무리 뒤져도 부모님의 흔적이라곤 없다. 나는 신기한 것, 새로운 것, 새삼스러운 것만 담아두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린 조카의 사진과 영상은 엄청나게 많다. 조카는 곧 만 두 돌이 되는데 볼 때마다 얼굴이 달라져 있고 할 줄 아는 게 늘어 있어 나는 그 애가 마냥 새삼스럽다. 매번 카메라를 켜게 될 만큼.

상당량의 데이터로 존재하는 조카의 사진과 영상을 뒤적이다 곁가지로 찍힌 엄마와 아빠의 흔적들을 겨우 찾았다. 주연은 엄연히 아기였고 당신들은 곁에 있는 김에 얻어걸려 찍혀 있었다. 그 수많은 영상 속에서 설핏 스쳐가는 부모님 얼굴을 보고, BGM(배경음악)처럼 걸리는 추임새를 듣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말해 조카와 함께할 시간은 이제 막 부여받았고 나이에 따른 가능성을 보자면 내 남은 평생 그 애는 내 곁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어떤가. 존재론적 숙명에 의해 우리는 언젠가 작별할 것이고 아무래도 그 과정에서는 내가 당신들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진정 기록해둬야 할 것은,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은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언젠가 사무치게 그리워할 그 독특한 억양과 입버릇, 나를 바라보는 표정과 걸음걸이였다. 쇼핑몰 후기 글을 올린 누군가가 새로운 옷을 어머니께 선물하고 새삼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처럼, 그리고 그 마음을 기록해둔 것처럼, 나도 엄마 아빠를 더 많이 새삼스러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자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신의 휴대폰 사진첩에 부모님의 흔적이 하나도 없다면 이번 주말엔 맘먹고 그분들을 찍어 보는 게 어떨까. 단언컨대 멀고 먼 훗날 그 데이터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기록이 될 것이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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