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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은 하나님의 임재를 축하하는 잔치”

게티이미지




성경의 시작과 끝은 먹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세기에서 첫 인류인 아담과 하와는 사과를 ‘먹다가’ 하나님 명령을 거역했다. 말세에 관한 비유로 가득한 계시록은 ‘잔치 음식’이 등장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구약성경에서도 먹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은 여럿 발견된다. 출애굽기에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자유를 얻은 것을 기념해 ‘유월절 식사’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지금도 유대인은 쓴맛이 나는 풀과 이스트를 넣지 않은 빵을 유월절 식사로 준비한다. 쓴 풀은 쓰라린 노예 생활을, 이스트 없는 빵은 빵이 채 부풀기 전에 급히 이집트를 탈출해야 했던 당시 상황을 상징한다. 과거의 아픔을 이야기뿐 아니라 입으로 기억하자는 취지다. 식사 전 축복의 말을 건네는 서구의 식문화도 ‘모든 식사가 성스러운 의식’인 유대인의 관습에서 기인했다.

미국 감리교 신학자이자 듀크대 실천신학 교수인 저자는 책에서 “식사는 거룩한 일이며 음식을 먹는 자리야말로 거룩한 주님을 만나기에 적절한 곳”이라며 성찬으로 형성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관해 집중 조명한다. 지난해 국내에 출간된 저자의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의 후속작이다. 전작이 세례를 중점적으로 논했다면 이번 책은 성찬을 주제로 성찬에 얽힌 역사와 신학적 논쟁, 성찬으로 살펴보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음식과 함께 드러났다. 예수가 참여한 식탁은 하나같이 중요한 사건이나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곤 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 물고기로 오천명을 먹인 오병이어 기적이 대표적이다. 남들이 꺼리는 세리와 창녀를 식사자리로 초대해 허물없이 대했고, 십자가형 직전 자신을 모두 버릴 열두 제자를 끝까지 섬기기 위해 최후의 만찬을 열었다. 부활 후에도 제자들을 찾아가 함께 음식을 나눴다.

초대교회 역시 이런 전통을 받들어 예배마다 성도에게 음식을 나누고 남은 건 주변의 과부와 고아에게 전하는 일에 힘썼다. 이 일을 맡은 교회 직제는 부제(deacon)로, 음식을 제공하는 집사 혹은 종업원을 뜻한다. 초대교회 지도자는 성찬을 ‘영혼을 위한 약’으로 부르기도 했다. 성찬을 의식이 아닌 사회적 약자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목회적 돌봄 행위’로 여겼기 때문이다.

성찬을 “예수를 기억하는 추모예식이 아닌, 주님의 임재를 축하하는 잔치”라고 정의하는 저자의 접근법이 인상적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성찬의 기쁨뿐 아니라, 그 식탁을 위해 희생한 주님의 헌신 역시 잊지 말 것을 당부한다.

아침의 커피 한 잔과 한낮의 간식,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먹는 저녁…. “이 모든 것을 감사함과 기쁨으로 먹고 마신다면, 모든 일이 성찬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책이다. 책 마지막엔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한국교회에 성큼 다가온 온라인 성찬 방식에 관한 논의도 나온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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