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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사례비 올리겠다” “충분하다”… 연말마다 실랑이

김연희 서울 신생중앙교회 목사(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2018년 11월 당회원들과 함께 교회 설립 41주년 축하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 성북구 석관동은 아파트와 건물이 들어서면서 번듯한 도심의 모습을 하기 시작했다. 생활 수준도 많이 올라갔으며 주변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개척되던 40년 전 석관동은 어려운 사람이 유난히 많았다. 판잣집이 즐비하고 연탄공장에서 날아오는 재 때문에 빨래를 밖에 널면 순식간에 새까매지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 몸이라도 다치면 그나마 하루 벌이도 할 수 없어 굶는 사람이 많았다. 헌금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외부 교회에서 부흥사로 초청받아 받은 사례금 중 일부는 헌금하고 일부는 형편이 어려운 본 교회 교인을 돕기도 바빴다.

교회가 부흥되자 장로들이 사례비를 더 주겠다고 했다. “사례비를요?”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나를 굶기지 않으셨다. 필요할 때마다 생각지 못한 통로로 필요한 만큼의 쌀과 물질을 채워 주셨다. 그 기간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헤아리게 됐고 동시에 물질의 헛됨을 배웠다. 그 덕분에 자유롭게 목회할 수 있었다.

사례비를 받으면서 연말 공동의회 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이 다음 해 사례비 책정이다. 웬만한 것은 목사의 뜻에 잘 따라주는데 이 시간만 되면 장로가 고집쟁이가 된다. 장로들은 더 주겠다고 하고, 나는 됐다고 한다. 그러다 늘 1시간을 넘긴다.

장로는 내가 얼마가 필요할지 식비며 난방비며 척척 계산해 낸다. 하지만 나는 그 예산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회자의 생활이란 적게 받아도 모자람이 없고, 많이 가져도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으면 하나님께서 채워 주실 것이요, 남으면 또 도와주고 싶은 곳이 어디 한두 곳인가.

한번은 교회 재정도 어려운데 생활비를 올려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공동의회 때 선포했다. “사례비를 절대 올려 받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장로들이 나의 의사를 무시했다.

그 주일, 나는 올린 금액을 고스란히 어려운 신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그다음 달에도 장로들은 올린 금액을 줬다. 나는 장학금으로 다시 내놓고, 여러 달 실랑이 끝에 본래 금액대로 주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가 울상이었다. “여보, 장로님들이 목사님께는 절대 말하지 말라며 올린 금액을 저한테 줬어요.” 어려운 살림에 쪼들리는 사모를 보다 못한 장로들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아내는 연세 지긋하신 장로님이 직접 찾아와 막무가내로 봉투를 놓고 가니 받아놓기는 했다. 그리고 내가 올 때까지 봉투를 열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장로들의 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마음의 짐을 덜 방법을 연구했다.

“그래, 흰 봉투에 돈을 넣어서 무기명으로 헌금합시다.” 헌금함까지는 무사히 들어갔는데 눈치 빠른 장로들이 금방 알아챘다. 이번에는 또 다른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카드를 만들어 준 것이다.

“목사님, 그럼 카드를 쓰십시오. 사례비로 환우들 병원비 내주시고, 여기저기 보태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걸 생활비로 해결하시면 어떻게 사십니까. 손님 식사비나 자동차 유류비는 목양에 해당하니 교회 카드로 제발 사용하십시오.”

정말이지 장로들의 정보력은 대단했다. 병원비를 대신 내준 건 또 어떻게 알아낸 걸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카드를 받아 지갑 깊은 곳에 고이 넣어뒀다.

3개월 뒤 장로님 한 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목사님, 혹시 카드 잃어버리셨나요. 카드를 잃어버리셨다면 말씀해 주셔야 분실 신고를 하거든요.”

3개월 동안 당회에 사용 내역이 없는 빈 고지서만 날아오자, 내가 잃어버리고는 미안해서 말 못 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카드를 잃어버리면 분실 신고해야 하는 것도 모를까.

몇 개월 뒤 장로 한 명이 카드 고지서를 흔들며 저쪽에서 걸어왔다. “목사님, 이게 뭡니까.” “저 이번에는 썼어요.” “네, 쓰셨더군요. 20만원.” “20만원? 오, 지난달에 내가 그렇게 많이 썼어요?”

순간 속으로 깜짝 놀랐다. 소문대로 카드는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쓴 것 같은데 그렇게나 되다니.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거 연말정산 신고용 고지서거든요.” “그게, 뭔데요.” “목사님이 1년간 사용하신 내역을 모두 보낸 거예요. 지난달엔 3만8000원, 올 한 해 20만원 쓰셨습니다. 대학생인 제 아들도 이거보다는 더 씁니다. 자꾸 이러시면 사례비 올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하, 아니에요. 올리지 마세요. 쓸 거예요. 내년부터는 열심히 쓰겠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역시나 카드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물건임이 틀림없다. 앞으로 카드 쓰는 거 생각 좀 해봐야겠다.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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