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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알려진 명구 속 진리의 뿌리를 추적하다





어쩌면 인류의 유전자에는 쉽게 믿는 성향이 새겨져 있는지 모른다. 세계 각국에서 골칫덩이가 된 가짜뉴스 문제는 최근 부상했지만,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믿는 경향은 고대 사회부터 계속됐다.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글귀다. “악법도 법이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생전 법이라면 응당 정의롭고 공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설파해왔다. 이 말은 로마의 법률지상주의를 표현한 라틴어 ‘두라렉스 세드 렉스’의 번역일 뿐, 소크라테스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게 후대 전문가의 견해다.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이자 미국 칼빈신학교 철학신학 교수인 저자가 상식인 것처럼 알려졌지만 출처가 잘못된 명구(名句) 10가지를 소개하는 책을 냈다. 저자는 단순히 출처를 바로잡는 것을 넘어 이런 오류가 생긴 인문학적 배경, 그 과정에서 현대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할 점을 체계적으로 논한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란 말의 출처도 통념과 다르다. 국내에서는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가 한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럽에선 교회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한 말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국내 연구진에 따르면 이 경구가 스피노자의 말로 국내에 알려진 건 1962년 한 일간지 칼럼에서 기인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이 말을 스피노자가 한 것으로 믿는 이들이 국내에는 많다.

하지만 루터가 이 말을 했다는 것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루터학자들은 “루터의 어느 저작에도 이 문장이 없으며, 그의 사후 400년간 어느 문서에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루터설 역시 후대의 잘못된 인용 탓이 크다. 독일 헤센주의 목사 카를 로츠는 1944년 고백교회 성도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여기에 루터의 말이라며 이 경구를 인용한다. 저자는 이 경구의 근원을 밝히고 페스트 유행 당시 루터가 집필한 글을 훑은 뒤 코로나19 시대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자세를 발견한다.

“전염병이 아무리 창궐하더라도, 이 세상 모든 일을 능력의 장중에 붙들고 선하게 인도하는 하나님을 굳게 믿으며 소망을 품은 가운데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백이 있을 때, 이 말은 더는 스피노자나 루터의 말이 아닌 우리 자신의 말이 됩니다.”

중세 신학자이자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경구 “참은 사물과 지성의 일치이다”의 유래를 살피면서는 현시대의 ‘포스트 트루스 현상’(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게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을 읽어낸다. 서구 문화권에서 참이 객관적 사실과 관련 없다는 의식이 깨진 건 기독교 신앙의 쇠퇴가 주된 요인이다. 절대자인 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기독교 신앙이 힘을 잃자 절대 진리의 힘이 무너진 것이다. 저자는 이때부터 사람들이 “참을 자기가 속한 편이나 자기 선호에 두는 방식에 너무도 익숙해졌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런 상황에도 참된 것에 대한 갈증이 우리 사회와 문화 속에 있다”며 “그리스도인이라면 좌파냐 우파냐 편 가르기에 편승하기보다, 무엇이 참인지를 가려내고 그 참된 것에 따라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경 내 허무주의의 전형으로 알려진 전도서의 “헛되고 헛되다”는 말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고 본다. 전자는 교부 히에로니무스가, 후자는 루터가 한 해석이다. 저자는 이 두 개념이 “우리 삶의 음악을 쉬지 않고 이끌어준다는 걸 전도서가 잘 보여준다”며 “팬데믹 상황에서 이보다 더 나은 삶의 교훈은 없다”고 단언한다.

동서양 철학자와 신학자가 여럿 등장해 내용이 딱딱할 것 같지만, 경어체 문장에다 친절한 설명, 흥미로운 소재가 곁들여져 어렵지 않게 읽힌다. 가짜뉴스나 코로나19 상황 속 이웃사랑 등 한국 사회와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향한 원로 철학자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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