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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2월 9일] 아들의 특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미워하던 세리와 죄인들을 가까이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런 예수님이 못마땅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5장에서 세 가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중 마지막 비유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탕자의 비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탕자와 같은 세리와 죄인들도 아들과 같이 사랑하시며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17세기 화가 렘브란트는 오늘 말씀을 배경으로 ‘탕자의 귀향’이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에는 총 6명의 인물이 나옵니다. 아버지, 탕자, 첫째 아들 그리고 거의 보이지 않는 세 명의 사람이 더 있습니다. 아마도 이 세 명 중 일부는 성경에 나오는 품꾼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탕자의 관점에서 말씀을 읽습니다. 종종 첫째 아들의 관점에서 말씀을 읽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품꾼의 관점에서 말씀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품꾼은 주인의 잔치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즐거워합니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탕자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겼습니다. 주인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아무것도 반대하지 않고 그대로 행합니다. 어떻게 보면 탕자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렘브란트의 그림에 분명히 드러납니다. 아들은 품꾼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품을 경험하게 됩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추시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온몸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20절에서 아버지는 먼 거리를 달려가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이유는 그를 측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측은히 여기다’는 이 땅의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인생들을 보셨을 때, 광야에 앉아 있는 무리를 보셨을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를, 여리고의 맹인과 나병 환자를 보시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셨습니다.

우리가 측은히 여기는 마음, 즉 예수님의 마음을 가질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아버지의 품에 안겨 그분의 크신 사랑을 풍성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렘브란트의 그림에 나오는 품꾼들은 주인 곁에 있지만, 주인의 품에서 느낄 수 있는 넓고 높고 깊은 사랑을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품꾼 중 하나로 여겨 달라고 말할지라도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리와 죄인 같은 모습일지라도 괜찮습니다. 달려와 안으시는 아버지 품에 안겨 그분의 사랑을 풍성히 누립시다. 그리고 이 세상을 측은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 품에 안겨 사랑을 누리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전인철 목사(그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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