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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가책 비용은 얼마인가요?



요즘 현관문을 열면 늘 상자 두어 개가 쌓여 있다. 샛별처럼 로켓처럼 배송된 물건들이다. 복도 저편 이웃들의 문가를 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근래 쇼핑을 온라인에 의지하게 된 사람이 나 말고도 많을 것이다. 덕분에 일상노동에 ‘배송된 물건 갈무리하기’가 추가되었다. 정작 필요한 건 영양제 한 통이나 사과 한 알 정도인데 그것들은 늘 마트료시카처럼 외피에 외피를 두르고 나에게 도착한다. 커터 칼을 뽑아 상자를 해체하고, 운송장을 파기하고, 물품을 적소에 비치하고, 분리배출을 위해 포장재를 정리하면 집 한편에 쓰레기 언덕이 탄생한다.

예전엔 이렇게까지 배송에 삶을 의탁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몇 달 전 집 근처 마트가 폐업했고,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짐에 따라 칩거 생활이 시작되었고, 그 와중 혹한까지 찾아와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아졌다. 이토록 구구절절한 변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하나다. 실은 무척 가책이 들기 때문이다. 독거인으로서 매주 쓰레기를 내 몸뚱이만큼 쏟아내는 삶에 사무치는 죄책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배달음식을 소비할 때도 그렇다. 중화요리 한 그릇을 시켜도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그릇, 겹겹의 랩, 단무지를 담은 스티로폼까지 버라이어티한 폐기물이 쏟아진다. 일단 식욕을 해결하고 밥상을 정강이로 쓱 밀고 난 후에야 보이는 쓰레기들. 고작 나의 한 끼를 위해 이토록 많은 부산물을 만들어도 되는 걸까. 입가에 들러붙은 춘장처럼 시커먼 가책이 진득하게 묻어난다.

옷장 정리를 할 때는 또 어떤가. 작년에 산 옷가지들을 꺼내보며 ‘내가 이걸 언제 샀지?’ 하고 갸우뚱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SPA브랜드나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행사 상품이라, 배송료를 맞추기 위해 티슈 뽑듯 툭툭 사들인 옷들이 대부분이다. 현대 사회를 살며 옷이 해져서, 닳아서 버리는 일은 드물 것이다. 옷은 애착의 수명이 다하면 절명한다. 쉽게 사들인 옷은 쉽게 버려지기 마련이고 그 탓인지 동네 의류수거함은 늘 만석이다. 이미 입에서 소매 몇 개가 비어져 나온 수거함에 헌 옷 몇 개를 욱여넣고 돌아오는 길에도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언젠가부터 이런 가책에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생필품을 배송받고 묵직하게 쌓인 아이스팩을 바라볼 때의 마음. 매주 볼록하게 차오르는 쓰레기통을 바라볼 때의 마음. 또 그것을 처리할 때 드는 정신적 에너지의 소모. 나는 이것을 ‘가책 비용’이라고 부르고 싶다. 싸게 샀다고, 편하게 샀다고 무조건 비용을 아낀 것이 아니다. 때로 거기엔 가책의 비용이 부과되고 있다.

환경의 적은 편리일 때가 많다. 장바구니보다 비닐봉지가 편리하고, 보리차를 끓여 마시는 것보다 생수 한 병을 사 마시는 것이 편리하고, 양말을 꿰매는 것보다 한 켤레 새로 사는 것이 편리하다. 어지간한 윤리의식이나 책임감이 없다면 소비는 기본적으로 편리로 기울 수밖에 없고 기업도 그를 따라갈 것이다. 이런 흐름을 ‘의식’에만 맡기기엔 부족한 일이니 ‘가책 비용’이라는 코스트적인 개념이 되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작 나부터가 당장 세제와 계란이 필요한데 옆 동네 마트까지 걸어가 이것들을 껴안고 손을 호호 불며 돌아오느니 이불 속에서 스마트폰이나 열고 싶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순한 마음만으로는 무거운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는다. 이럴 때 배송품을 받아들고 쌓인 쓰레기를 보며 느낄 죄책감을 상상하고 이를 가책 비용으로 치환해본다. 내 마음의 평화는 얼마의 가치일까? 이렇게 타산해보면 열에 두어 번쯤은 ‘내일은 산책 겸 마트에 들러서 사오자’ 하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택배 상자를 뜯으며 이따금 물이 채워진 아이스팩이나 종이로 된 완충재들을 보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가책 비용을 그나마 덜 썼기 때문이다. 많은 개인이 또 기업들이 가책 비용도 하나의 소모임을 인지하면 모종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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