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조용신의 스테이지 도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 세상은 아름답다

뮤지컬 ‘뮤직맨’의 한 장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최대 기대작이지만 코로나19 상황 탓에 아직 티켓 판매를 시작하지 않았다. Liz Lauren 유튜브 캡처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면 이번 시즌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최대 기대작은 9월 윈터가든 극장에서 개막할 예정인 뮤지컬 ‘뮤직맨’이었다. 그러나 제작사 측은 내년 4월 프리뷰를 거쳐 5월에 개막할 계획을 세웠지만 불안정한 코로나19 상황 탓에 아직 티켓 판매를 시작하지 않았다.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지인 브로드웨이와 영국 런던 웨스트앤드는 나란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문을 닫아걸은 상태다. 그나마 먼저 문을 열 조짐을 보인 곳은 영국이다. 런던 서쪽에 자리잡은 씨어터 로얄 윈저에서는 연극 ‘햄릿’의 연습이 6월 29일부터 시작됐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로 유명한 배우 이언 맥켈런이 주인공 햄릿으로 등장해 나이 제한 없는 햄릿을 보여줄 예정이다.

런던 공연계 재개 소식에 대서양 건너 뉴욕 공연계도 들썩이고 있다. 관객들은 영화 ‘엑스맨’으로 유명한 배우 휴 잭맨이 주연으로 나선 ‘뮤직맨’이 예정대로 9월에 전격 공연을 시작하길 고대한다. 하지만 현재로선 내년 개막과 관련한 구체적인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뉴욕 공연계는 내년 1월 3일까지 극장을 열지 않는다. 최근 브로드웨이 제작자와 극장주를 대변하는 브로드웨이 리그가 성명을 통해 9월 6일까지였던 공연 중단 기간을 다시 연장한 바 있다. 그런 참에 영국의 ‘햄릿’이 새로운 방역 지침을 따라 무사히 공연을 마친다면 이는 양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문 닫힌 공연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맥켈런이 출연하는 ‘햄릿’이 영상으로서가 아닌, 진짜 관객 앞에서 공연할 가능성은 여전히 반반이다. 현재 확정된 것은 연습일정 뿐 공연날짜는 미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오랜만의 연습실 풍경에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웨스트엔드에서도 극장 오픈 소식이 들려온다. 런던에서 가장 오랫동안 공연한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갯츠비’가 공연 재개 날짜를 9월 1일로 잡고 입장 관객 숫자를 40% 줄인 90여명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다만 슈퍼마켓에 갈 때보다 더 적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될 것이라는 프러덕션의 주장에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공연 재개 일정은 카메론 매킨토시, 소니아 프리드먼 등 유명 제작자들이 정부에 공연계 지원을 절박하게 요청했던 5월 인터뷰 이후 잡혔다. 그리고 작곡가이자 제작자인 앤드류 로이드-웨버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투어 프러덕션 서울 공연의 안정적인 방역 시스템을 지적하며 공연장에는 일상적 거리두기와는 다른 시스템이 적용돼야 한다고 역설한 이후의 일이다.

다만 미국은 가을 이후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올 수 있다는 전염병연구정책센터(CIDRAP)의 경고를 주목하고 있다. 이 경고가 사실로 맞아 떨어진다면 미국의 극장들이 문을 여는 시기는 한참 더 미뤄질 전망이다.

이들이 부러워하는 한국 공연계도 실상은 다중이용시설 제한 조치로 인해 대부분의 국공립극장 공연들이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등 벼랑끝에 내몰린 상황이다. 이 와중에도 상업 공연들은 ‘오페라의 유령’의 전례를 따라 방역 정책 안에서 여름 성수기를 준비중이거나 공연을 시작했다. 대극장 공연 가운데 초연으로는 드랙퀸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이 꿈을 이룬다는 내용의 영국 뮤지컬 ‘제이미’가 단연 두드러지고 재연으로는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모차르트’ ‘킹키부츠’ ‘헤드윅’ ‘렌트’ ‘브로드웨이 42번가’, 소극장 작품들로는 ‘난설’ ‘로빈’ ‘어쩌면 해피앤딩’ 등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이 무대 한가운데 서기까지의 모습이 펼쳐진다.

세상 밖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기화제로 삼아 인종, 국적, 성별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차별’ 뉴스가 넘쳐나도 무대 위 세상은 아름답다. 무대에서는 꿈이 이루어지고 차별을 극복하며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의 강물이 넘쳐흐른다. 다시 없이 자극적인 전염병의 시대에, 어쩌면 무대야말로 사랑스러운 이상향이 아직은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 전 시대의 파편일까. 한때는 자극적이었 무대가 지금은 아름다웠던 지난 ‘일상’을 되새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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