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고통의 시간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다



작가 엘리 위젤(1928~2016)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유대인 600만명이 학살된 이 참극에서 그 역시 부모와 세 명의 여동생이 희생됐다. 생존 후 10여년간 홀로코스트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친구이자 작가인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설득으로 ‘밤’이라는 회고록을 출간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대학에서 가르치며 평화와 인권을 위해 헌신해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16년 7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 아리엘 버거는 스승의 강연록을 모아 ‘위트니스(Witness)’를 발간했다. 국내에는 ‘나의 기억을 보라’는 제목으로 최근 번역 출간됐다. 책엔 비극의 시간을 견뎌낸 증인이자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아왔던 그의 기도가 바뀌는 과정이 세밀히 묘사돼 있다.

하루에도 수천 혹은 수만 명이 불태워지는 현실 속에서, 자신 또한 죽음과 멀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던 때가 그의 나이 15살 즈음이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신앙을 더 유지할 수 없는 시간이었음에도, 그는 수용소에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했고 아버지가 했던 기도의 맥을 끊을 수 없었다.

비극적 상황이 종료되고 가족과 조국 모두를 잃은 채 보육원으로 보내졌을 때, 그는 어린 시절의 기도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점점 그곳에서 새로운 믿음이 움트는 것을 발견했다. 분노하는 신앙이었고 활동하는 신앙이었으며 고뇌하는 신앙이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신앙은 훼손되고 사라졌지만, 새로운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됐다. 그는 말한다. “나는 상처 입은 신앙의 가치를 믿습니다. 그런 수많은 고난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상처 입은 신앙뿐입니다. 그렇게 한 번쯤 상처를 입은 신앙만이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도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겁니다.”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해법이라고 내놓을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2주라고 했던 멈춤의 시간이 계속 연장돼 출혈이 심해지고 있다. 분명히 현재 우리가 겪는 상황은 언젠가 정리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 남는 상처와 그로 인한 후유증은 우리를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대부분 사람에게는 도려내고 싶을 만큼 어둠과 혼돈의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교회와 신앙도 마찬가지다. 크게 상처를 입었다. ‘예배’에 ‘강행’이란 단어가 연결되며 온라인 예배든 현장 예배든, 사회가 보내는 염려와 부정적인 시선을 교회 공동체가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성도들 역시 그동안의 열정과 섬김이 ‘광신’으로 의심받고, 매주 경험했던 신앙적 유익과 공동체의 친밀감을 꽤 긴 시간 중단하고 있다.

지금의 시간은 우리 신앙의 흑역사로만 남게 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면 말이다. 엘리 위젤의 말처럼 우리는 침묵 속에서도 임재하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일하심에 눈을 뜰 수 있고, 나사렛 예수께서 함께하셨던 상처받은 이들의 현실에 동반자로 참여하는 부르심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로의 회귀와 원상 복귀가 아니라 깨어진 세상 속에서 들려줄 새로운 신앙 언어를 찾는 일이다. 아니, 그 언어는 없던 것이 아니라 본래 우리 삶에 늘 있었지만, 돌로 떡을 만들라는 유혹 때문에 우리가 듣지 않으려 했던 소명의 음성일 수 있다.

작가 토마시 할리크의 말처럼 우리는 세상의 고통을 단순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상처 입은 자로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정으로 마음 깊이 받아들여 ‘세상의 치유’에 나서야 할 때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의 질고와 슬픔을 끌어안으신 그리스도의 상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성현 목사(필름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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