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불로불사 신천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원한 청춘”(不老不死 人永春) “죽음이 끝나고 영생이 시작되는 신천지”(死末生初 新天地) “서양의 기운이 동방으로 오는 구세주”(西氣東來 救世眞人)…. 조선 중기 학자 남사고(1509~71)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격암유록’(格菴遺錄) 중 일부다.

이 내용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의 교리서인 ‘계시록의 진상’(이만희, 1988) 마지막 부분에 인용돼 있다(1998년과 2005년 판에선 삭제). 이만희는 “이 예언이 응한 것을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에서 증거하고 있다”면서 마치 자신과 신천지에 대한 예언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주장한다.

그런데 격암유록은 신천지뿐 아니라 그 이전 박태선의 전도관, 조희성의 영생교, 문선명의 통일교 등 다수 기독교계 이단들에 의해 애용됐다. 즉 한국이 동방이며 이곳에 재림주가 나타나고 환란을 피할 수 있는 천년왕국이 세워진다고 주장하는 한국 이단들의 뻔한 레퍼토리의 원조가 됐다. 이러한 기본 틀에 각 교주의 주장을 추가하고 성경 내용을 가져다 끼워 맞춘 후 그들만의 ‘창의적’ 교리를 만들어냈다.

특히 한자를 분해해 설명하는 파자(破字) 풀이를 이용해 성경을 비유적으로 해석한다. 통일교는 격암유록에 나오는 팔금산(八金山)이 6·25전쟁의 피난처 부산(釜山)이며, 전전(田田)은 큰 밭이 아니라 십자가(十)로부터의 말씀(口), 그리고 밭 전(田) 자가 두 개이니 초림주가 아니라 재림주의 말씀이라 풀이해 재림주 문선명이 6·25전쟁의 피난지 부산에 온 것이라고 해석한다. 전도관은 격암유록을 인용해 성경의 동방을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섬들은 잠잠하라”는 이사야(41:1) 말씀을 사용해 일본은 동방이 아니며 “땅끝에서 부른다”(사 41:9)는 구절로 동방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해석한다.

격암유록은 정말 조선 중기에 기록된 예언서일까.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격암유록은 필사본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전도관에서 만들어졌으나 사라졌고 필사본이 남아 기증됐다고 알려져 있다. 학계에선 대부분 격암유록을 위서(僞書)로 본다.

허호익(대전신대) 은퇴 교수는 몇 가지 이유로 격암유록은 거짓이라 판단한다. 책에 나오는 국한문 혼용체에는 조선 중기의 한글 고어가 아니라 현대식 한자 표현이 다수 포함돼 있다. 심지어 성경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도 보인다. 따라서 격암유록은 위작이며 현대사의 많은 사건을 미리 예언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건이 일어난 후 기록됐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격암유록 내용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했던 신천지를 비롯한 수많은 이단이 존재해왔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 중심적’ 주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등장한 구원자는 한국인이며 그가 바로 교주 자신이라 주장한다. 성경의 부족함을 충족해 줄 새로운 계시가 한국어로 기록됐다고 주장한다. 각 교주의 ‘로드맵’에 따르면 구원받을 14만4000명 대부분은 한국인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샤머니즘과 유·불교, 동학 등 한국의 종교사상을 절묘하게 혼합해 해석한다. 환란을 피할 수 있는 천년왕국이 한국 땅에 건설된다고 주장한다. 철저히 한국 중심적인 이단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류를 타고 세계화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난다.

한국 이단들은 기본적으로 혼합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역사와 교리는 거짓 위에 세워졌으며 저작권 위반은 기본이다. 격암유록 같은 위서는 물론, 다른 교주의 주장을 가로채거나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무차별 표절해 업그레이드한다. 이단 간의 이런 관계는 계보라고 표현하기조차 민망하다.

탁지일(부산장신대 교수·현대종교 이사장)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