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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코로나19 대하는 세계(2)



지난달 24일 ‘코로나19 대하는 세계’라는 제목의 시론을 쓴 지 한 달이 지났으나 여전히 바이러스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르고 세계 정치에 미치는 암울한 전망은 늘어만 간다. 우선 배타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자국 우선주의의 반세계화 물결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확산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기업은 필요한 부품을 자국의 창고에 쌓아 놓기보다는 수요에 맞춰 필요할 때 공급받는 ‘무재고 적기공급 생산 방식’을 선택했다. 애플의 최고 경영자인 팀 쿡은 “재고는 악(惡)과 같다”고 선언하면서 공급망 관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전 세계 제조업의 3의 1을 차지하던 중국의 공장이 멈춰 서면서 공급에 차질이 생겨 2월 세계 노트북 출하량이 애초 전망치에서 50% 정도 줄었고, 1분기 스마트폰 생산량도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가 예상된다. 한 국가 또는 지역에서만 특정 부품 공급이 이뤄질 때 발생하는 위험을 경험한 세계는 결국 협력보다는 각자도생에 비중을 실을 것이다.

세계화가 지향해야 할 목표로 보였던 유럽연합(EU)도 위기가 닥치자 자국 우선주의로 급격히 선회했다. 인력과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솅겐 조약이 무색하게 EU 각국은 앞다투어 국경을 폐쇄하고 방역제품 유출을 막았다. 하나의 유럽은 “동화 같은 이야기”라면서 반이민,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극우 정당이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코로나19 영향으로 더욱 반세계화,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항생제의 95%는 중국에서 생산된다. 이에 따라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이 “의약품 공급망을 해외에서 국내로 이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정명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의약품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 퍼져 있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작업을 가속할 것이다.

코로나19는 글로벌 리더로서의 미국 위상을 떨어뜨렸다. 미국은 지난 70년간 경제력과 군사력 외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당성, 세계 차원의 공공재 공급, 위기 시 국가 간 협력 주도 등을 결합해 지도국 위치를 누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사태 초기 미국 내 시스템에 의해 울려진 경고를 무시했다. 신속한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격리·치료하고 명확한 방역 지침을 선포하라는 보건 당국의 거듭된 제안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과 같이 자신의 직관을 믿고 중국으로부터 입국을 막는 조치만 단행했다. 그 결과 바이러스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해 세계 차원의 공공재 공급은커녕 미국민의 생필품 사재기도 막지 못하고 있다.

그 틈을 중국이 파고들어 EU의 다른 국가들도 다 외면하는 이탈리아에 방역물품과 의료진을 제공하고, 이란 세르비아 등도 돕고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 54개국에도 마스크와 진단 장비를 공급했다. 2014∼2015년 에볼라가 창궐했을 때 미국은 세계 협력체제를 주도적으로 구축해 확산을 막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간 협력 도출은 고사하고 미국의 최우방인 유럽발 입국 금지도 사전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단행했다.

코로나19가 한국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크다. 한국은 국민총소득 중 수출과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인 대외의존도가 80%를 넘는다. 반세계화가 가속화돼 무역 장벽이 높아지고 공급망이 훼손될수록 한국 경제는 어려워진다. 미국은 한국의 동맹국이다. 북한 위협 대응과 핵을 보유한 주변국에 대한 억제 차원에서 한국은 미국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신뢰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 생존과 번영을 위한 근본적 대책과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치열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국제어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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