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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한·일 관계가 위태롭다



모든 것은 징후가 있는 법이다. 다가올 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일 관계의 크고 작은 갈등은 또 한번 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일본은 코로나19 대책을 이유로 한국인 입국자를 2주간 자비부담 격리하고, 기존의 90일간 사증면제를 중단하고, 입국 가능한 공항을 나리타·간사이국제공항 두 군데로 한정했다. 지난 9일 하루 동안 매일 2만명이던 방일 한국인은 단 5명으로 줄었다. 일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사전에 한국과 충분히 협의했다고 주장하지만, 불합리하고 과도한 조치에 청와대는 크게 실망했고 깊은 유감을 나타냈다. 외교부는 비자 중단 등 맞대응 조치를 취했고, 일부 언론에선 유독 일본에만 강경 대응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10일 열린 한·일 간 수출규제 정책대화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경제산업성 간부들은 무려 16시간 마라톤 화상회의를 했다. 그러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렸다. 일각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폐기론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3개월간 일본 측이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자 대일 강경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진짜 위기는 따로 있다. 대부분 한·일 갈등의 배후에 깔린 최대 쟁점이기도 하다. 바로 강제징용 문제가 폭발 직전 임계점에 거의 다다랐다. 2018년 10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을 결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작년 5월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자산매각을 신청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이제 남은 것은 사법부의 ‘매각 명령’뿐이다. 매각 명령이 나오면 일본 기업 자산을 처분하는 절차에 들어간다. 일본 정부는 즉각 수출규제를 포함한 강경조치를 취할 것이다. 한·일 관계는 최악의 사태로 빠져들고, 반한 감정에 편승한 아베 정권은 다시 부활할지도 모른다.

한국 정부는 진정성을 가지고 다양한 해법을 일본에 제시한 바 있다.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고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유지한다면, 일본 측과 협상 가능하다는 자세를 보였다. 일본 기업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배상금을 지급하면 다양한 대안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은 사법부 판결과 피해자 중심주의를 관철할 수 있고, 일본은 명분상 1965년 청구권협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검토 가능하다. 그럴 경우 한·일 양국에 상호 간 타협 가능한 영역이 존재한다.

물론 한·일 외교 당국 외에도 다양한 결정주체들이 존재한다. 한국 정부는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고 피해자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이 난 승소자 외에 법원 소송이 계류 중인 피해자 약 1000명, 전체 강제동원 피해자 약 21만명이 존재한다. 어느 범위까지 한국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하는가, 그 기준과 이유를 결정하기 어렵다.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끝난 사안에 대해 추가 보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패소한 일본기업도 한국인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다가 자칫 주주총회에서 배임죄 문책을 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2월 문희상 국회의장이 대표 발의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으로 기억·화해·미래 재단을 설립해 배상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아베 정권과 총리관저, 자민당은 선호하고 있으며, 국내 상당수 피해자 단체도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을 무효화하기 십상으로, 청와대는 선뜻 수용하지 않고,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들은 절대 반대이다. 국내 법원의 ‘매각 명령’ 시곗바늘은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 ‘매각 명령’ 이후 한·일 관계는 사상 최악이 될 게 뻔하다. 코로나19만으로 너무나 힘든 요즘, 생각조차 하기 싫다. 이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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