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희망은 걷는 이를 통해 다가온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말이 돌 정도로 우울감이 팽배해진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영화에서나 보던 풍경이 현실이 되고 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에 취약한지 알게 됐다. 예술이 우리에게 건넸던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가 허구적 상상이 아닌, 예언적 메시지였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다.

감염에 대한 잠재적 위험으로 다른 사람을 의심해야 하고, 거리를 둬야 하는 현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재난이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얼마든지 훼손하고 황폐하게 만들 수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됐다.

코맥 맥카시의 소설 ‘더 로드(THE ROAD)’는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한 지구의 어느 날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남은 이들의 삶은 생존을 기뻐하기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하다.

먹을 것이 바닥 난 사람들은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지옥 같은 땅 위에서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걷는다. 그들의 목적지는 남쪽이고 이들은 불을 운반한다. 왜 남쪽으로 가야 하는지, 그 불이 어떤 불인지는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황폐했던 기억만 갖고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묻는다. “우리가 사는 게 아주 안 좋니.” 아들은 아버지에게 되묻는다.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버지는 말한다. “글쎄, 나는 그래도 우리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우린 아직 여기 있잖아.”

그렇다. 아직 여기 있다는 것, 곧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무한한 역전의 가능성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과 하루라는 시간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다윗은 비루해 보여도 이방 왕 앞에서 미친 척하며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됐고,(삼상 21) 십자가 위의 강도 한 사람은 평생의 잘못을 넘어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마지막 만남의 시간 속에서 낙원에 머무르는 은혜를 입었다.(눅 21) 생명과 하루라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면 우리는 아직 삶이라는 여정을 걸어야 할 이유와 소명이 남아있는 것이다.

분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경제적 피해를 비롯해 많은 어려움을 안겨줄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당장 주일예배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와 여론이 늘어가는 것만 해도 큰 부담이다. 주일예배를 온라인과 가정예배로 대체하며 확산 방지에 동참했던 여러 교회의 노력과 별개로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 자체를 이교 집단의 맹목적 신앙과 비슷하게 여기는 시선이 생겨났다.

이러한 분위기에 전도와 선교가 쉬울 리 없고, 곧바로 교회의 생존과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도 여전히 우리에겐 걸어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 마치 ‘더 로드’ 속 아버지와 아들이 남쪽을 향해 끝없이 걸어갔던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 아버지는 아들에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기에 이겨낼 수 있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어둠 속으로 보내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그럼에도 소설의 마지막엔 아버지가 죽음을 맞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아들에겐 또 다른 착한 여행자가 나타나 여정은 중단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옮기는 사람들’이다.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주신(요 14:18) 주님이 함께하신다. 비록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우리 또한 걸음을 멈춰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희망은 걷는 이를 통해 세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생명과 하루라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우리는 걸어야 한다.

성현 목사(필름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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