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생명에 대한 기억 쓰기



황량했던 겨울 대지 위에 연한 풀이 돋고 마른 가지에 새싹이 움틀 듯하다. 기후가 따스해지고 한 주 앞으로 다가온 입춘의 기운이 봄에 대한 기억을 부른다. 하지만 쉬 봄에 대한 기억이 소환되지는 않는다. 기후가 뒤죽박죽됐고,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질 동안 미세먼지가 우리를 힘겹게 해서 그런가 싶다.

기후 위기만 봐도 지구의 상황은 심각한데, 미세먼지가 열을 더해 기상 재해를 부추기고 있다. 이번 호주 산불로 10억 마리의 야생 동물이 타죽고 한반도 절반만 한 숲이 살아졌다. 게다가 호주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의 하늘을 뿌옇게 변하게 해 지구 온도를 더 높였다.

만약 지금 이 땅에 주님이 오신다면 뿌연 하늘을 보고 뭐라고 하실까. 시대의 징조를 보고 하늘의 뜻을 알아차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할 것이다. 하늘의 징조를 읽을 수 있는 예언의 능력은 없더라도, 전 세계 과학자들이 내놓는 분석에 귀 기울이며 그 의미대로 삶을 돌이키길 지금도 애타게 기다리신다. 오염된 대기질로 죽어가고 있는 이를 불쌍히 여기며 뿌연 하늘 뒤에 숨겨진 세상, 허락받은 것보다 많이 쓰면서도 여전히 더 많은 것을 욕망하고 있는 이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신다. 그 결과 수많은 생명이 죽을 수밖에 없고, 지구도 더 버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 마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며 지구와 맺어온 관계와 지구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자. 지구가 이렇게 되기까지 이 땅 지구는 내게 어떤 곳이었나. 지구에 대한 기억은 우리 행동의 이유를 알게 해줄 것이다. 필요하면 행동의 변화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을 팔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우리가 팔 경우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땅을 팔라’는 백인들에게 건넨 한 인디언 추장의 말이다. 그가 가진 땅에 대한 기억은 ‘거룩함’이었다. 만약 백인들이 그의 부탁처럼 땅을 거룩함으로 기억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의 위기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억지일 수 있다. 하지만 절멸의 상황에 놓인 지구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주님이 “참 좋다”고 했던 지구로의 여행을 떠나고 싶다.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거닐던 참 좋은 곳, 하나님을 가까이서 대할 수 있는 곳, 그곳을 찾기만 하면 남은 자들에게 ‘회복의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거기 머무르길 즐긴다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했던 것, 보긴 봐도 알지 못했던 걸 깨달아 알게 되리라. 지구에 대한 좋은 기억, 우리 중심에 있는 ‘거룩함’에 대한 기억이야말로 생명과 지구,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해주리라.

나와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것’. 이를 회복하는 한 해 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어떻게 찾느냐 하는 건 누가 가르쳐줄 수 없다. 우리의 기억만이 살릴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우리를 지탱하고 이끌어 줄 ‘거룩함’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회복하고 성장시킬 수 있을지 함께 묻고 답하자. 각자 답을 찾는 순간 우리는 그 거룩한 기억을 온전히 지키고 돌볼 수 있으리라. 그러면 창조주 하나님께도 온전한 감사를 드리게 될 것이다. 또 모두를 위해 자신이 허락받은 만큼 지구를 사용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지구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흐려졌지만, 우리 곁엔 아직 수많은 생명이 살아 있다. 다가오는 봄을 다시 기억해보자. 봄이 움터내는 생명을 보며 하나님이 건네시는 말씀을 옮겨 적어보자. ‘생명에 대한 기억 쓰기’를 시작해보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창조에 대한 기억 쓰기’요, 나의 나 됨을 생각하게 하는 글쓰기가 될 것이다. 2020년 생명에 대한 기억 쓰기로 하나님이 거룩하게 창조한 모든 만물, 특히 맑은 하늘과 다음세대 가운데 현존하는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되찾자. 이 기억으로 순간순간을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한다.

유미호(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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