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포(肉脯)는 소고기를 얇게 저며 말린 것을 말한다. 우둔살에 진간장을 치고 주물러서 길쭉하게 말린 장포, 다진 고기를 둥글게 빚고 잣을 박은 편포, 간장 대신 소금으로 간을 한 염포 등이 있다. 보존성이 뛰어나 예부터 전투식량으로 애용됐다. 공자(孔子)는 육포 한 묶음만 가져오면 제자로 받아줬다고 한다. 배움을 원하면 누구나 가르쳤다는 이야기에 육포를 인용한 것은 당대의 선물 가운데 가장 격이 낮았기 때문이다. 반면 ‘고려도경’은 송나라 사신을 대접한 술상에 어포와 함께 육포가 올랐다고 기록했고, 조선의 궁중 잔칫상에도 얇게 썬 고기를 모아놓는 절육(截肉)에 편포가 들어갔다.

소박하기도 했고 귀하기도 했던 육포는 현대에 와서 안줏감으로 굳어졌다. 쫄깃하고 짭짤해서 대구포처럼 취급되던 위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1, 2인 가구의 급증과 무관치 않다. 간편한 먹거리, 오래 두고 먹을 간식,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혼술(혼자 마시는 술)에 적합한 음식의 수요가 커지면서 사람들은 육포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한우 소비 다양화를 추진하던 농협은 이 트렌드를 간파하고 ‘육포데이’를 정했다. 육(6)과 포(4·four)의 발음을 따서 6월 4일을 육포 먹는 날로 선전하며 마케팅을 벌였다. 순창 고추장 육포, 불고기 간장 육포, 치즈 육포 등 가공업체들이 내놓는 상품도 다양해졌다.

재발견이 거듭되던 육포는 지난해 마침내 추석선물세트 명품 코너에 입성했다. 신세계백화점이 명품세트 품목을 늘리며 갈치 곶감 견과류와 함께 육포를 포함시켰다. 1++등급 한우의 채끝살로 만들었다는 이 육포는 40만원이나 했다. 이번 설에는 대형마트도 와규육포세트, 채끝육포세트, 저온숙성육포세트 등을 전면 배치했다. 이마트의 설 선물 예약판매에서 4만~6만원대 육포세트는 버섯과 인삼을 뛰어넘어 굴비를 위협하는 매출을 보였다.

이런 인기를 감안해 자유한국당이 각계에 보낼 설 선물로 육포를 골랐던 모양이다. 이 선물이 조계종 총무원에 배달됐다. 육식을 않는 이들이 당대표 명의로 전달된 육포세트를 열어보고 난감했을 것이다. 서둘러 회수하고 사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인재를 영입하려다 갑질 논란에 역풍을 맞고, 여당 대표의 장애인 발언을 비판하려다 덩달아 장애인을 비하하더니, 이번에는 트렌드를 예민하게 따르려다 무례한 선물을 보내고 말았다. 하는 일마다 구멍이 너무 많다. 이래서 여권에 실망한 이들도 한국당은 쳐다보지 않는 건가….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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