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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탄핵의 강



루비콘 강은 이탈리아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강이다. 아펜니노 산맥에서 발원해 아드리아해까지 80㎞를 흐른다. 루비콘은 붉다는 뜻의 라틴어 루베우스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진흙이 쌓여 강이 붉게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수량이 줄고 오염마저 심해 초라한 모습이라고 한다.

역사가들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BC 49년 1월 10일 건넜던 루비콘 강이 바로 이곳이라고 보지만,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당시 루비콘 강은 로마 본토와 갈리아인들이 거주하는 로마의 속주를 가르는 경계였다. BC 58년 갈리아 총독으로 임명된 카이사르는 7년 간 전쟁을 벌여 갈리아 전역을 복속시켰다. 카이사르의 권력이 커지자 정적 폼페이우스는 원로원과 결탁해 그를 총독에서 해임한 뒤 본국 소환명령을 내렸다.

병력 없이 로마로 돌아가면 숙청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고민하던 카이사르는 제13군단을 거느리고 루비콘 강을 건넜다. 쿠데타인 셈이다. 후일 전기작가 플루타르코스는 당시를 묘사하면서 카이사르가 평소 좋아하던 아테네 극작가 메난드로스 작품에 등장하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글귀를 그리스어로 언급해 심경을 표현했다고 적었다. 이후 루비콘 강을 건넌다는 것은 모험적이며 되돌릴 수 없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을 표현하는 고사성어가 됐다.

지난해 10월 유승민 의원은 보수세력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탄핵의 강을 건널 것, 개혁 보수로 나아갈 것, 헌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을 것 등이다. 탄핵의 강이 루비콘 강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면 문학적으로 뛰어난 비유라 부를 만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담한 발걸음을 내딛고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자는 뜻이기 때문이다. 탄핵의 강은 그리스 신화에서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가른다는 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2016년 12월 국회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표결 때 찬성했던 측과 반대했던 쪽을 갈라놓고 있는 간극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최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가, 탄핵 문제가 총선에 장애물이 돼선 안 된다는 혁신통합추진위원회의 원칙에 동의하면서 보수 통합 논의가 급진전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보수 진영을 갈라놓고 있는 게 탄핵의 ‘강’ 정도가 아니라 ‘바다’라는 지적도 있다. 과연 보수 정치가 탄핵 표결에 대한 평가를 역사의 몫으로 남겨두고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의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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