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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기도하고 도울 때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산불은 없었다. 지난 5일까지 호주 산불로 서울 면적의 166배가 불에 탔고 코알라를 비롯한 야생동물이 8억~9억 마리 사망했다. 세계자연기금(WWF)이 발표한 사망 동물 수는 더 많다. 12억 5000만 마리. 인간은 무력했다. 산불로 소방관 1명을 포함해 최소 27명이 숨졌다. 건물 5900여채가 불에 탔고 10만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2000㎞나 떨어진 뉴질랜드는 호주 산불로 발생한 미세먼지로 신음하고 있다. 인공위성에서 본 호주는 대륙 전체가 산불로 타들어 가는 모양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위성사진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3차원 이미지는 종말을 예언하는 성경 구절을 연상케 한다. “피와 불과 연기구름이 나타나고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붉어질 것이다.…”(욜 2:30~31)

호주는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 중 전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곳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산불이 자주 났다. 2013년 태즈메이니아주 산불은 80일 만에 진화될 정도로 오래 지속됐다. 1939년 1월 빅토리아주에서 일어난 ‘검은 금요일의 대화재’로 주 전체 면적의 4분의 3이 불탔다. 이번 산불은 유례없는 폭염과 건조한 날씨, 강풍으로 발생돼 ‘파이어스톰’을 만들며 퍼졌다. 파이어스톰은 폭풍처럼 몰아쳐 번지는 불이다.

산불을 일으키는 바람은 재난을 가져오기에 악마나 사탄같은 이름이 붙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고온건조한 바람은 악마란 뜻의 ‘디아블로’다. LA 쪽으로 부는 뜨겁고 마른 편동풍은 ‘산타아나’로 칭한다. 산타아나는 스페인어로 사탄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불은 하나님과 관련이 깊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신 4:24, 히 12:29)로 묘사된다. 불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심판 도구이며 불시험(벧전 4:12)으로 불리는 혹독한 시련을 상징한다. 반면 하나님은 불 속에서 자신의 찬란한 영광을 나타냈고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을 불기둥으로 인도했다. 메시아는 ‘불을 던지러 온 자’(눅 12:49)로 묘사됐고 성령은 불 가운데 강림하셨다.(행 2:3)

그래서일까. 지금 호주 기독교계는 기후변화를 초래한 인간의 죄를 회개하는 동시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과 동물을 보호하는 데 마음을 모으고 있다. 이사야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 백성의 악이 가시와 엉겅퀴를 태우는 불과 같아서 연기가 치솟는 산불처럼 타오르고 있기에”(9:18, 현대인의성경)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와 은총의 단비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호주 기독교 설문조사 기관인 ‘내셔널처치라이프서베이’에 따르면 교회 출석 신자 56%가 인간이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달 호주 힐송교회 설립자이자 담임인 브라이언 휴스턴 목사는 “중·단기 산불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하기로 했다”면서 호주 대형교회들과 협력해 소방관을 위한 모금 운동, 이재민에게 쉼터와 음식, 물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빌리그레이엄전도협회(BGEA) 소속 신속대응팀은 산불 발생 초기부터 미국과 캐나다, 영국에서 차출된 위기 전문 목회자들을 현장으로 파송했다. 현재 40여명의 목회자들이 화재 지역을 방문해 상담과 기도를 하고 있다고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가 지난 10일 보도했다.

자연재해나 대재앙이 발생하면 교계 일각에선 종말론이나 심판설이 고개를 든다. 누구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8년 호주 정부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끔찍한 산불인가. 동성애 때문이었다면 심판도 ‘핀셋’ 심판이라야 한다. 산불로 죽은 사람은 동성애자였을까. 수억 마리에 달하는 동물은. 피해를 본 교회는.

반면 동성애자 천국인 미국과 매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리는 게이 축제를 향한 대규모 심판은 왜 없는가. 이번 산불은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타락한 인류 전체가 초래한 지구적 고통이 아닐까.

BGEA 신속대응팀 스튜어드 비버리지 목사는 “이재민을 만나면 ‘다 내게로 오라’ 하신 예수님을 전한다”며 “그들은 대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침묵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누구를 정죄하거나 탓할 때가 아니다. 기도하고 도와야 할 때다.

신상목 종교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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