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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알뜻 말뜻] 직설과 적선



지하철 3호선 환승 통로에 웬 남자가 중얼거리며 서 있다. 사람들을 향해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바로 옆을 지날 때야 무슨 말인지 들을 수 있었다. “배고파요. 추워요.” 구걸하는 이다. 행색이 남루하다. 사실 나는 이런 이들에게 그다지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어서 웬만해서 지갑을 여는 일이 없다. 정해진 후원금을 제외하고는 길거리에서 적선을 하는 것은 매년 12월 처음 눈에 띄는 구세군 냄비에 1만~2만원을 넣는 연말의 작은 통과의례 정도다.

퇴근길 사람들로 붐비는 환승역에서 그를 스쳐 몇 발짝 나아가던 발길을 돌려, 그에게 만원짜리 1장을 건넨 건 그의 ‘카피’가 너무나 직설적이어서였다. 배고프고 춥다는 말이 동정을 사려고 지어낸 말이거나 고심해서 꾸며낸 말로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고파요, 추워요’는 그냥 튀어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일종의 비명이었을 것이다. 일전에 또 다른 역에서 젊은 사람이 어눌한 말투로 자선을 요청했을 때도 나는 지갑을 꺼내지 않았다. “조금만 도와주세요, 장애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도와주세요’와 ‘배고파요’의 차이, 그게 뭐라고 내 반응이 다르게 나오는 걸까.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따뜻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그깟 한 줄 문장에 좌우되는 내 이성을 탓해보기도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인 걸까. 그날 저녁은 배고프고 추운 그가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라도 앞에 두고 앉았기를.

단도직입 직설법을 구가하는 카피의 달인을 만났던 그 시간, 나는 마침 적선동에 가는 길이었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 이 지명은 주역(周易)의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에서 나왔다. 적선(積善), 즉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롭고 좋은 일이 따른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한성부는 세부 행정구역을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의 5부로 나누고 그 아래 52개의 방(坊)을 두었는데, 적선동이라는 지명은 그중 서부 적선방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적선방 옆 지금의 세종로 일대에는 여경방(餘慶坊)이 있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이 나란한 지명으로 현실 속에 구현되어 있었던 셈이다.

적선동에서 놀면서 적선에 대해 생각했다. 괘를 설명하는 주역은 왜 선행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적선이라는 말을 썼을까. 적선한다는 말은 동냥에 응해 돈이나 물건을 거저 준다는 뜻이 아니라, 선을 쌓는다는 말이다. 반복적으로 선을 행하면 쌓인다고 표현한 것은 그 영향이 한 개인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안, 그러니까 후대의 자손들에게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가 짧은 나는 적선이라는 뜻을 표현하는 영어단어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자선이나 기부, 구호나 원조가 아니라 적선. 신의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카리타스(caritas)라는 말이 있기는 해도 적선이라는 말은 서양인들에게는 낯선 불교적, 동양적 사고에서 나온 단어임이 틀림없다. 주역 문언전(文言傳)은 다시 말하길, 선이 쌓이듯이 불선도 쌓인다고 했다. 적악(積惡)이 아니라 적불선(積不善)!

새해다. 각자 새해의 소망을 마음에 품었을 것이다. 지난해에도 내가 믿고 좋아하는 단체에 고작 돈 몇 푼 후원했을 뿐 적선을 하지 못한 나는 올해의 소망을 직설로 쓴다. 미워하는 것들은 계속 미워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여전히 좋아해야지. 그러기 위해 올해는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적선하리라고. 적불선이 되지는 않으리라고.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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