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라이프] 화장품 ‘큐레이션 시대’… 유명 브랜드보다 개인 취향 우선

화장품을 소비하는 행태가 브랜드 위주에서 개인의 취향 중심으로 바뀌고, 뷰티 업계는 큐레이션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국내 H&B스토어 1위 브랜드인 올리브영은 홍대점을 열고 밀레니얼 세대 집중 공략에 나섰다. 올리브영 제공
 
세계적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위)와 국내 프리미엄 편집숍 ‘시코르’(아래)도 경쟁 모드에 돌입했다. 각사 제공


화장품을 좋아해 친구들 사이에서 ‘코덕’(코스메틱 덕후)으로 불리는 김민지(29)씨의 화장대를 살펴보면 이렇다. 기초화장품은 토너 2종류, 에센스, 세럼, 에멀전, 크림 3종류, 앰플과 마스크팩까지 총 10가지다. 메이크업도 즐기는 김씨는 자외선차단제 2종류, 프라이머, 파운데이션, 컨실러, 쿠션, 파우더,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아이브로 펜슬, 아이브로 마스카라, 아이섀도 팔레트 4종류, 블러셔 3종류, 립스틱 틴트 립글로스 등 입술 제품 10종류 포함 메이크업 제품 28가지를 두고 쓴다.

립·아이 리무버, 클렌징 오일, 클렌징 폼, 모공팩까지 세안 제품 4가지를 포함하면 김씨가 평소에 두루 사용하는 화장품은 모두 42가지나 된다. 42가지 화장품의 브랜드는 거의 제각각이다. 기초화장품은 8개 브랜드, 메이크업과 세안용은 27개 브랜드 제품을 쓰고 있다. 화장품의 가짓수만 많은 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섞어 쓰고 있는 것이다.

화장품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제품명만 봐도 눈이 팽글팽글 돌 것 같다. 하지만 요즘 트렌드를 본다면 김씨의 화장대가 유별난 것도 아니다. 화장품은 스킨부터 크림까지 세트로 사던 시절을 지나온 40~50대 이상 여성들이나 화장품으로 올인원 하나만 쓰는 남성들에게는 다소 낯선 풍경이겠지만, 20~30대 여성의 화장품 소비는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

품목마다 유명한 제품을 여러 루트로 몇 가지씩 추천 받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리뷰로 비교해 보고, 헬스 앤드 뷰티(H&B) 매장이나 편집숍 또는 백화점에 방문해 직접 사용해보고, 나에게 잘 맞는 제품으로 정착하는 과정을 겪는다. 유명 브랜드 제품으로 전부 구비하기보다는 나에게 적합한 제품을 찾아내는 식이다. 소비 경향이 이렇게 바뀌다보니 화장품 기업들은 제품 라인업을 짤 때, 세트 구성 대신 단일제품으로 시작해 소비자 반응을 보고 구성을 늘리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올리브영·롭스·랄라블라 등의 H&B 스토어, 신세계백화점이 운영하는 시코라 등의 편집숍 중심으로 화장품 유통 채널이 재편된 것도 소비자들의 화장품 구매 패턴이 이렇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진단도 다르지 않다. 이희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 코리아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셀러브리티나 브랜드에 대한 이른바 ‘로열티 소비’가 시들해지고 다양한 제품을 경험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며 “업계도 (다양한) 라인업으로 차별화 전략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뷰티케어 시장 규모는 14조8000억원으로 세계 9위에 올랐다. 앞으로도 뷰티업계의 성장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 세계적인 화장품 편집매장 세포라가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파르나스몰에 처음으로 문을 열면서 시장에 활기를 더했다. 세포라는 프랑스 명품 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의 화장품 편집숍 브랜드로 전 세계에 26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세포라는 국내 1호점인 파르나스몰점에 이어 다음달 서울 중구 롯데 영플라자에 2호점, 내년 1월에는 서울 서대문구 현대유플렉스에 3호점을 여는 등 2022년까지 우리나라에 14개 지점을 낼 계획이다.

김동주 세포라 코리아 대표는 지난 23일 프리뷰 간담회에서 “한국 소비자들은 한 브랜드에서 쇼핑하기보다 아이템별로 물건을 사고 소셜 미디어에 경험을 나눈다”며 “다양한 큐레이션을 갖춘 세포라는 한국 고객들에게 쇼핑하기에 최적의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포라 1호점에는 타르트, 후다 뷰티, 아나스타샤 베벌리힐스 등 해외 직접구매 상품으로 유명한 제품들과 활명, 어뮤즈 등 국내 독점 계약 제품을 매장에 갖춰 놨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채널의 등장을 반기는 분위기다. 24일 문을 연 뒤 일주일 동안 4만여명이 매장을 방문했다. 주말에는 줄을 서서 입장할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업계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크게 동요할 게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보통 매장을 내고 6개월은 지난 뒤부터 제대로 된 실적을 가늠할 수 있다. 당장은 궁금해서라도 사람들이 많이 몰릴 것이기 때문에 다른 업체들에게 타격을 줄 것인지 지금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세포라의 강력한 경쟁상대인 시코르도 매장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시코르는 2016년 12월 1호점을 연 뒤 지난 9월 명동에 28호점을 열었고, 올해 안에 30호점을 내겠다는 계획이다. 이달에는 홍대점이 새로 문을 연다. 세포라가 메이크업 제품에 강점을 가졌다면 K뷰티 제품을 앞세운 시코르는 스킨케어 부문에서 더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20~30대 여성들이 가장 즐겨 찾는 화장품 매장인 H&B 스토어 1위 올리브영은 세포라와 접점이 많지 않다고 보고 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올리브영은 소비자들에게 제안을 하던 시기를 넘어 ‘개인의 취향’이 선명해진 소비 트렌드에 따라 고객들이 다양한 제품들을 만날 수 있도록 구성하는 방향으로 바꿔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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