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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이식 수술로 얻은 새 팔, 내인생 180도 달라졌어요”

국내 첫 팔 이식 환자인 손진욱씨(오른쪽)가 지난 16일 수술 집도의인 대구 W병원 우상현 원장의 도움을 받아 왼팔의 악력을 테스트받고 있다.
 
손진욱씨가 이식받은 왼팔의 검지와 중지로 V자를 만들어 보이고(왼쪽)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먹고 있다.


뇌사자 팔 기증받아 수술 성공, 손가락 움직이고 감각도 느껴… 평생 반려자 만나 올 6월 결혼
손·팔이식 대기자 등록기관 서울대병원 등 전국 7곳 실제 등록한 대기자 아직 없어
정부·학회서 규약 마련하고 자궁·안면 등 다른 복합조직 이식 연구도 서둘러야


최근 몇 년 새 우리나라 장기 이식의 새 장을 연 ‘두 사건’이 있었다. 국내 최초로 이뤄진 팔 이식과 생체 폐 이식이다. 불의의 사고로 한쪽 팔을 잃고 절망 속에 살던 30대 청년과 폐가 망가져 언제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절박한 처지의 20대 여성. 청년에겐 평생 멍에로 남을 장애를 벗게 하고 여성에겐 새 생명을 줄 첨단 의료술이 있었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실현이 어려웠다.

하지만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자 했던 의료진의 열정과 노력,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으려던 환자와 가족의 열망이 결국 법·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금 그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국민일보는 두 주인공을 만나 수술 후 달라진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고 기적을 가능케 했던 의료술, 바뀐 제도의 현황을 살펴보는 기사를 격주로 연재한다.

“팔 이식 후 인생이 180도 달라졌어요. 누군가를 만나는게 싫고 두려워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는데, 지금은 매사에 자신감이 생겼고 평생의 반려자도 만나 오는 6월 결혼합니다.”

지난 16일 대구 달서구 감산동의 한 아파트. 2017년 2월 국내 처음으로 뇌사자의 팔을 이식받아 화제를 모았던 손진욱(37)씨가 기자에게 신혼집을 처음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손씨는 보란 듯이 왼손으로 옷걸이를 힘있게 잡고 벽에 고정하는 작업을 해 보였다. 일부러 왼쪽 팔의 옷소매를 위로 걷어 보여줬다. 왼팔의 손목 위 10㎝쯤에 살을 이어붙인 흉터가 남아 있었다. 그 부위 아래 전체가 남의 손과 손가락이었다. 2년2개월 전 그는 남은 인생을 걸고 팔 이식 수술을 감행했다.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진 40대로부터 어렵사리 기증받은 팔이었다.

손씨는 “없던 게 생겼으니까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젠 온전히 내 팔 같아요. 힘이나 감각도 예전의 70~80%는 돌아온 느낌”이라며 웃었다. 그는 왼손으로 음료수를 마시고 검지와 중지로 V자를 만들어 보였다. 기자와 즉석 팔씨름도 했다. 왼손을 마주 잡자 가볍게 쥐어오는 악력이 느껴졌다.

손씨는 2015년 직장인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프레스 장비에 왼쪽 팔이 빨려들어가 눌리는 사고를 당해 손목 윗부분까지 절단했다. 2년간 의수(義手)를 꼈다. 그는 “1800만원짜리 의수를 달았는데, 남은 팔 근육의 힘으로 엄지 등 손가락 3개를 움직일 수 있었다. 기계적 움직임이어서 만족도 ‘제로(0)’였다”고 했다. 딱딱한 의수가 달려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지금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진짜 손이 있다.

보건복지부 지정 수부(손·팔) 이식 전문병원인 대구 W병원 우상현 원장팀과 영남대병원 의료진의 집도로 10시간 넘는 수술 끝에 얻은 결실이었다. 손씨는 그 사실이 요즘도 종종 꿈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수술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왼손 주먹을 쥐었다 펼 수 있고 붙어 움직이던 다섯 손가락을 따로 움직일 수 있다. 악수하고 땀 닦고 머리감고 운전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문자 보내는 것도 문제 없다. 더울 때 땀이 나고 추운 날엔 손끝이 시리게 느껴진다. 컵에 물을 따르고 숟가락질도 자연스럽다. 웬만한 물건은 다 잡지만 아직 젓가락질, 바늘귀 꿰기, 손톱 깎기 등 섬세한 작업은 조금 불편하다. 지난해와 올해 지역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를 하기도 했다.

예비 신부(33)는 교회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다 지난해 10월부터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고 한다. 팔 이식이 두 사람이 가까워진 계기가 됐다. 그녀는 “이전에는 의기소침하고 말도 잘 안 했는데 수술 후 밝아지고 말도 많아져 좋았다”고 했다.

손씨는 “면역거부반응 때문에 평생 면역억제약을 먹어야 하는 부담이 있긴 하지만 팔 이식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결혼도 하게 돼 부모님 걱정을 덜어드린 게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또 “팔을 준 기증자와 유족, 의료진에게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 복지기관에서 장애를 갖고 사는 사람들의 손발이 되어 봉사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손씨의 인생 역전을 도운 W병원 우상현 원장은 “검지와 중지로 V자를 만들 수 있다면 뼈와 근육 힘줄 혈관 등이 조화롭게 붙었음을 의미한다. 다만 신경은 자기 팔을 붙여도 100%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우 원장은 “손씨의 경우 다행히 수술 직후 한번 면역거부 반응이 생겼지만 10년간 잘 지내다가도 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붙인 팔을 다시 떼어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 늘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원장은 수지 접합 및 수부 이식의 국내 최고 권위자다. 1999년 세계 최초로 팔 이식에 성공한 미국 루이빌대 클라이넛 수부외과센터에서 연수하며 복합조직 이식 기술을 배웠다. 특히 손·팔 이식은 간이나 신장 등 단일 장기와 달리 뼈 신경 혈관 근육 피부 힘줄 같은 여러 조직을 복합적으로 연결해야 하는 고난도 의료술이다. 당시 우 원장은 팔 이식 첫 수혜자인 매튜 스콧의 치료와 재활 과정을 지켜보며 한국에서도 꼭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장기이식법에는 손·팔이 포함돼 있지 않아 수술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2010년 복지부로부터 신의료기술 승인을 받고 2016년 대구시의 의료비 지원을 약속 받고서야 본격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고도 한참을 기다린 끝에 40대 뇌사자 유족이 팔 기증 의사를 밝혔고, 당시 W병원에 팔 이식을 신청한 손씨가 조건에 부합해 수혜자로 최종 선정됐다.

엄밀히 말해 수술은 무법(無法) 상황에서 성공했다. 정부는 그제야 장기이식법령 손질에 나섰고 지난해 8월부터 손·팔 이식이 가능해졌다. 수술과 면역억제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1억원 넘는 비용 부담도 확 줄었다.

29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뇌사자의 손·팔 기증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심장과 간 신장 등 내부 장기를 적어도 하나 이상 기증할 의사를 밝힐 때 가능하다. 장기이식법에서 정한 ‘생명 유지 장기 우선 원칙’에 따른 것으로, 손·팔은 생명 유지보다는 삶의 질 향상과 관련된 장기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손·팔 이식 대기자로 등록하려면 손·팔 절단 부위의 상처 치료 후 6개월이 지나야 한다. 손·팔 결손을 증명하는 의료기관의 장애진단서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견서를 제출해야 한다. 내부 장기와 달리 손·팔의 경우 이식 부위가 눈에 보이고 남의 손·팔을 붙이는 것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나 정신적 문제(우울감)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또 내부 장기의 경우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KONOS)의 철저한 장기 배분 원칙에 따라 우선권이 주어지는 것과 달리 손·팔 이식 대상자는 뇌사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장이 선정할 수 있다.

기증자와의 조직 적합성 검사 결과 피부색, 손·팔 크기, 대기 기간, 삶의 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한다. 비슷한 조건이 2명 이상이면 양팔, 양손 없는 대기자가 우선권을 갖는다. 전국에 손·팔이식 및 대기자 등록 기관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은 서울·경기 5곳(서울대·한림대한강성심·고려대안암·신촌세브란스·분당서울대병원)과 지방 2곳(영남대·전북대병원)이다.

2, 3호 손·팔 이식 수혜자가 언제 나오느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손·팔 이식 대상이 될 수 있는 상지절단(1, 2급) 장애인은 2016년 기준 7000여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1호 팔 이식 성공 이후 W병원에는 전국의 상지절단 장애인이 몰렸다. 우상현 원장은 “팔 이식을 받고 싶다고 밝힌 장애인이 200~300명에 달한다. 이들 중 이식 조건에 부합한 70~80명에게 영남대병원에 이식 대기자 등록을 권했다”고 말했다. 그는 “2호 팔 이식은 양팔 이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하지만 7개 지정 의료기관 장기이식센터 취재 결과 손·팔 이식에 대한 문의는 잇따르고 있지만 실제 등록한 대기자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향후 정부나 관련 학회가 적극 나서서 손·팔 이식의 ‘프로토콜’(규약)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수부외과학회 팔이식위원장인 은석찬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1호 팔 이식 사례는 오랜 기간 준비와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특별한 경우”라며 “2, 3호는 프로토롤에 맞게 이식이 이뤄져야 한다. 손·팔 기증자가 나오면 장기 적출을 위한 외과 수술팀(흉부외과, 성형외과, 일반외과)의 순서를 정하고 손발을 맞추는 훈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렇지 않고 갑자기 뇌사자 팔 기증과 이식 상황이 발생하면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손·팔 기증자 확보 노력도 필요하다.

아울러 아직 국내 법령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해외에선 이미 시행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조만간 닥칠 상황인 자궁, 성기, 안면, 후두 등 다른 복합조직 이식에 대한 연구도 서둘러야 한다고 은 교수는 강조했다.

대구=글·사진 민태원 의학전문기자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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