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라이프] “소방관들이 진짜로 필요한게 뭔가 고민하며 현장으로 뛰죠”

 
이베이코리아 소셜임팩트팀 원종건 매니저(왼쪽)와 충북소방본부 충주소방서 충주호 수난구조대 대원들이 지난해 2월 내륙지방에서 수난구조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소방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베이코리아 제공
 
‘히어, 히어로’(Here, Hero) 캠페인 비디오를 찍기 위해 장비를 갖춰 입고 모인 강원도 대관령119안전센터 소방관들. 이베이코리아 제공


지난 2017년 6월 ‘영남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경남 양산 영축산자락을 두 남자가 함께 오르고 있었다. 나무를 헤치고 바위를 넘으며 길이라고 할 만한 게 영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르다 말고, 갑자기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조난을 당한다고 생각해봐요. 등산하다가 다리는 부러졌고 주변에 아무도 없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어. 119에 신고를 해야죠. 그럼 지금 위치가 어디냐고 물어볼 거 아닙니까. 뭐라고 말 할 수 있겠어요.” 이런 질문을 던진 이는 경남 양산소방본부의 오우택 대원이고, 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이베이코리아 소셜임팩트(사회공헌사업)팀 원종건 매니저다.

원 매니저는 이베이코리아의 소방관 지원 사업인 ‘히어히어로’(HereHero) 프로젝트를 위해 직접 소방관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었다. 히어히어로는 예산이 충분치 않은 지방소방본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 원 매니저가 매번 각기 다른 소방 현장을 찾아가 맞춤형 지원을 하기 위해서 발품을 팔고 있다.

원 매니저는 오 대원에게 이렇게 답했다. “여기 나무랑 바위…아 뭔가 특징적인 게 없는데, 119에 뭐라고 해야 하나요? GPS로 안 잡히나요?” 하지만 영축산에서 조난을 당하는 경우에 GPS는 전혀 소용이 없다고 했다.

“GPS로 주소지는 나오는데, 참고로 산은 주소지가 한 개예요. 그냥 ‘이 산에 있다’고만 나옵니다.”(오 대원) “등산로를 따라서 위치를 알려주는 표시목이 있던데….”(원 매니저) “등산로에 있으면 다른 등산객들이 도와주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등산로를 벗어나신 분들이 산악 구조를 요청합니다. 길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까 실족사고가 많이 나거든요. 전화라도 터지면 다행인거죠.”(오 대원)

원 매니저는 산악구조의 ‘히어로’가 돼 줄 것 같은 ‘헬기’는 어떠냐고 했다. “일단 경남에는 헬기가 두 대 밖에 없어요. (2017년 당시에는 그랬다.) 그리고 헬기를 사람을 찾으려고 띄우지는 않아요. 어차피 헬기 시야로 보더라도 우거진 숲 아래에 있는 사람을 육안으로 찾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로프로 구조할 사람이 내려올 수도 없어요. 아무리 심한 경우라도 구조대원이 톱을 들고, 조난당한 사람을 찾으러 올라가서, 근처 나무를 베어내고, 공간을 확보하고, 그 다음에 로프를 내려야지. 안 그러면 헬기가 추락할 위험도 있어요.”(오 대원)

이번엔 ‘인명구조견’을 등장시켰다.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긴 합니다. 하지만 인명구조견은 국립공원 단위로만 배치돼 있어요. 경남에는 지리산 국립공원을 둘러싼 산청이나 함양 위주로만 있어서 요청하더라도 골든타임이 놓치고 난 뒤입니다.”(오 대원)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영축산은 해발 1000m의 높은 산이라 조난자가 생기면 수색지역이 너무 넓어 어려움을 겪어왔다. 등산객도 많아 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고민을 거듭하다 방법을 찾았다. 숲이 우거진 곳을 요리조리 찾아갈 수 있고, 조난 현장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날개달린 기계. 드론이다.

원 매니저는 14일 “소방관님들께서 필요한 게 뭔지 말씀해주실 때 현장을 자주 보여주신다”며 “현장에 가서 구조의 어려움을 머릿속으로 함께 그려보다 보면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찾을 수 있게 되죠”라고 말했다.

이베이코리아는 2017년 기준 최고 기술을 탑재한 인스파이어 드론과 열화상카메라를 대구소방서에 지원했다. 드론과 카메라를 구입하는 데 든 비용은 1000만원이었다. 드론 사용법이 익숙지 않은 소방관들에겐 드론 동호회원들이 도움을 줬다. 직접 찾아와 조작법을 알려주고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도 제시해줬다.

이베이코리아의 ‘히어히어로’ 프로젝트는 소셜임팩트의 귀감이 될 만한 사례로 꼽힌다. 소셜임팩트는 기업들이 기존에 해 오던 사회공헌사업(CSR)보다 영역을 넓힌 것이라고 보면 된다. CSR보다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깊숙이 개입한다. ‘히어히어로’ 프로젝트처럼 맞춤형 지원을 해주는 식으로 보다 디테일한 접근을 하는 것이다. ‘보여주기’보다 ‘효과’에 초점을 맞췄다. 임팩트 있는 사회공헌이 거듭되다보면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이베이코리아는 소셜임팩트 사업으로 대도시 소방본부 대신 지방 소방본부를 찾았다. 그리고 ‘디테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현장을 방문했다. 강원도 산불 사고 이후 원 매니저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전엔 서울에 있다가 오후엔 세종에 가고 저녁엔 강원도로 출동하는 날도 있었다.

원 매니저는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게 뭔지를 찾아냈다. 그래서 ‘히어히어로’ 프로젝트가 강원소방본부에 지원하기로 한 것은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휠체어’와 발암물질이 묻어있는 방진마스크를 씻어주는 소독기라고 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휠체어는 요양병원 화재 구조를 위해 쓰였는데, 이번 산불에도 부상을 입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진마스크 소독기’는 이베이코리아가 직접 제작을 의뢰했다. 그동안 소방관들은 칫솔로 직접 면체를 닦으면서 써 왔다고 한다. 화재 현장의 연기가 뿜어낸 발암물질이 칫솔로 얼마나 닦였을지는 알 수 없다.

원 매니저는 “소방관님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연기’다. 온갖 독성 물질로 구성된 연기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을 개선해나가는 게 소방관님들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베이코리아의 ‘히어히어로’ 프로젝트는 2017년 시작됐다. 고객참여형 사회공헌기금인 G마켓 후원쇼핑과 옥션 나눔쇼핑 기금을 통해 지금까지 23억5000만원어치의 간이제설기, 허리보호조끼, 좁고 미끄러운 지역에서 부상자를 구조할 수 있는 캐리 벨트 등 ‘맞춤형’ 지원을 할 수 있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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