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무관해도 “일단 미워”… 병든 사회 ‘비상식적’ 행태



글 싣는 순서

<1부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2부 : 공동체 균열 부르는 ‘신계급’>
<3부 : 한국을 바꾸는 다문화가정 2세>
<4부 : 외국인 노동자 100만명 시대>
<5부 : 탈북민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법>



나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혐오’와 ‘차별’ 현상은 전통적인 ‘갈등’과 성격이 다르다. 갈등은 주로 집단 사이에 벌어진다. 과거 한국 사회의 대표적 갈등인 지역 갈등의 장에서도 사람들은 상대방을 헐뜯었다. 하지만 이 행위에는 내 고장이 다른 지역보다 뒤처지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이 담겨 있었다. 노사 갈등은 때로 매우 격렬했지만 서로 원하는 욕구를 충족하면 금방 화해했다.

혐오와 차별의 장에선 그냥 남을 비난하기만 한다. 지난달 서울지하철 이수역 인근 주점에서 여성과 남성 간 발생한 폭행 사건은 말다툼에서 시작됐다. 그들이 쏟아낸 원색적인 말에 ‘저들과 싸워 뭔가를 얻겠다’는 욕망은 담겨 있지 않았다. 상대가 속한 남성 집단(여성 집단)이 너무 밉다는 마음만 있었다.

혐오와 차별은 이익 추구가 최우선 가치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다. 내게 직접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미워한다. 이런 비합리적 행위가 많아지는 건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신호다.

창간 30주년을 맞아 국민일보가 비영리 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과 함께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7.9%가 한국의 사회 갈등이 10년 전에 비해 심해졌다고 답했다. 사회 갈등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을 고르라는 질문에는 빈부 갈등(35.4%)이 가장 많이 선택됐고, 이념 갈등(22.4%), 성 갈등(20.8%)이 뒤를 이었다. 세대 갈등과 지역 갈등이 심각하다고 고른 응답자는 각각 8.5%와 5.2%에 불과했다. 성 갈등이 세대·지역 갈등에 비해 더 심각한 것으로 꼽힌 점이 눈에 띈다.

사회과학자들은 혐오와 차별이 부각되는 현상의 근원에 장기간 지속된 경제적·정치적 불평등과 개인 소외 현상이 있다고 말한다. 불평등은 사회적 박탈감을 낳았다. 부풀어오른 박탈감의 공간을 채운 건 억울함과 불안이다. 나와 다른 존재를 적(敵)으로 느끼게 하는 감정이다.

불평등은 가족을 비롯한 전통적 공동체 해체를 불러왔다. 각 개인은 공동체에서 소외돼 홀로 서야 하지만 일자리, 복지 등 사회경제적 기반은 충분하지 않다.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킬 곳을 찾기 힘들어진 개인이 나와 다른 집단, 나보다 힘이 약한 소수 집단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혐오와 차별 현상을 치유하려면 공동체를 되살리는 게 이상적이다. 하지만 불평등을 일으키는 사회경제적 구조가 그대로인 이상 이는 쉽지 않다. 가족의 짐이 지금도 너무 무거우니 여기에 정서적 책임 등의 부담을 더 얹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달 한 자동차 커뮤니티에 자살 예고 글을 올린 청년을 회원들이 신고해 살려냈다. 삶의 한계에 이른 개인을 붙잡아주는 손길이 사회에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공동체를 되살리기는 어려워도 공동체성을 회복시킬 가능성은 있다. 주변에 대한 작은 관심, 그리고 그 관심을 키우려는 노력이 혐오와 차별 현상을 줄이는 출발선이 될 수 있다.

국민일보는 비영리 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과 함께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2~3일 한국사회 갈등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지난 2~3일 전화(20%) 및 휴대전화(80%) 자동응답시스템(ARS) 방식으로 실시됐다. 1만2644명에게 전화를 걸어 응답률 8.0%를 기록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다.

‘공공의창’은 리얼미터 리서치뷰 우리리서치 리서치DNA 조원씨앤아이 코리아스픽스 타임리서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국여론연구소 피플네트웍스리서치 서던포스트 세종리서치 소상공인연구소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14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 분석 기관이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하고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는 조사를 하자’는 취지로 2016년 출범했다.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모아 공익성이 높은 조사를 실시한다. 14곳이 돌아가며 매달 한 차례 ‘의뢰자 없는’ 공공조사를 실시해 발표하고 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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