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크 반이민정책] 시민권 없는 유학생·자영업자들 ‘추방 공포’에 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반이민 정서가 급속히 퍼지면서 한인 교민사회도 움츠러들고 있다. 일각에선 앞으로 소수인종 추방 사례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도 온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뉴욕 한인타운의 모습. 하윤해 특파원







주미 한국대사관이 추산하는 미국 거주 한국인 이민자는 약 240만명이다. 이 가운데 법적으로 미국 국민인 시민권자는 140만명이다. 나머지 100만명은 장기 거주하는 영주권자와 비자를 발급받아 체류 중인 유학생, 주재원, 자영업자 등이다.

미국 정부의 추방 대상에서 미국 국민인 시민권자는 제외된다. 추방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술적으로 따지자면 시민권이 없는 100만명 한국인 이민자의 경우 조그마한 문제라도 발생하면 미국 정부의 추방 대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추방의 공포는 한국 이민사회를 뒤덮고 있다. 특히 비자를 발급받아 체류하는 자영업자, 기업 주재원, 유학생들이 추방 공포에 더욱 떨고 있다. 워싱턴DC에서 일하는 한 기업 주재원은 “예전에는 추방을 남의 얘기로 느꼈는데, 트럼프 행정부 들어선 ‘실제 나도 추방당할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회사원 입장에서 추방당해 한국으로 돌아가면 모든 걸 잃는 것”이라며 “그래서 더욱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용실을 하는 김모(38·여)씨는 추방 얘기가 나올 때마다 움츠러든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28일 국민일보 기자와 만난 김씨는 “가끔 손님도 아니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와 행패 부리는 사람도 있고, 머리를 다 깎은 뒤 지갑을 놓고 왔다며 돈을 안 주고 가는 사람도 있다”며 “합법적인 체류자 신분이지만 괜히 경찰에 신고했다가 일만 커질 것 같아 답답하지만 모든 걸 참는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에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표적 수사가 있다는 말도 나돈다. 대표적인 예가 음주운전이다. 오바마 행정부 때는 초범 음주운전자에게는 많은 액수의 벌금과 처벌을 내리면서도 추방까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초범도 추방하고 있다. 다른 기업 주재원은 “저녁 약속이 있을 때는 무조건 차량호출 서비스인 ‘우버’를 이용한다”면서 “미국 경찰이 한국인들이 잘 가는 한식당 주변에 숨어 있다가 술 취한 한국인이 차를 몰고 가면 뒤따라가 잡는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 당시였던 2014년 미국에서 추방된 한국인은 237명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마지막 임기였던 2016년에는 123명이 추방됐다. 오바마 행정부 말기에는 한국인 추방자가 급격하게 줄었다.

그러나 반(反)이민정책을 펼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인 추방자가 다시 증가 추세로 반전됐다. 트럼프 행정부 1년차였던 2017년 한국인 추방자는 157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도보다 34명 증가한 수치다.

최근 5년간 자료를 놓고 분석했을 때 친(親)이민정책을 내세웠던 오바마 행정부 때 한국인 추방자가 가장 많았던 것은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미국의 정치적 사정이 숨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민자 보호를 위해 추진했던 대표적인 정책은 ‘다카’(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제도·DACA)다. 다카는 불법 입국한 부모를 따라 미국에 들어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31세 미만의 청년과 청소년들이 정상적으로 학교와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추방을 유예한 행정명령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9월 5일 다카 폐지를 공식 발표했다. 현재는 다카의 운명을 놓고 법적 싸움이 진행 중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친이민정책을 밀어붙일 때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한 여소야대 상황이었다. 특히 공화당은 유색 인종인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불법 이민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친다고 공격했다.

한국의 외교부 당국자는 “당시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정치적 딜’이 필요했다”면서 “공화당으로부터 다카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물밑 약속을 받아낸 뒤 문제를 일으킨 이민자들을 많이 추방하는 방식으로 타협을 했다”고 말했다. 미국 전체의 이민자 추방이 확산되면서 자연스레 한국인 추방자도 늘었다는 설명이다. 오바마 행정부 말기에는 공화당 눈치를 보지 않았다. 2015∼2016년에 한국인 추방자가 많이 줄어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한국인 추방자가 증가했지만 여전히 정점을 찍었던 오바마 행정부 때보다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착시현상’이라는 게 미국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최영수 변호사는 2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이민자들에 대한 단속 건수가 크게 늘었지만 이민국의 심사 인원이 그만큼 증가하지 않아 적체 현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적발된 이민자가 많지만 이를 심사할 인력이 부족해 추방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트럼프 행정부 중반기에 들어서면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추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동규 변호사도 “오바마 행정부에서 한국인 추방자가 늘었던 것은 일시적 현상”이라며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한국인 추방자가 급증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근 4년간 미국 수감시설에 구금돼 있는 한국인은 240∼254명으로 집계됐다. 국회 외통위 소속 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실에서 입수한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 수감 중인 한국인 수는 추방자 수에 비해 변동 폭이 거의 없었다. 올 8월 기준으로 한국인 수감자를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244명으로 세 번째로 많았다. 일본이 550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이 299명으로 2위를 기록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한국인 수감자를 거의 모두 접견하고 있다”면서 “미국 내에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우리 국민이 수감 중에 부당한 대우나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뉴욕=하윤해 특파원, 권지혜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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