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 회장 르노·닛산 합병 추진 막아라” 日경영진 쿠데타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있는 닛산자동차 본사 모습.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지난 19일 검찰에 체포된 이후 르노와 닛산 간 경영권을 둘러싼 알력 다툼이 드러나고 있다. AP뉴시스


카를로스 곤(64)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갑작스러운 실각 배경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곤 회장이 프랑스 정부의 요구에 따라 르노와 닛산의 합병을 추진하자 일본의 닛산 경영진이 이를 막기 위해 ‘궁정 쿠데타’를 벌였다는 것이다. 회사 합병은 프랑스가 일본 내 일자리를 빼앗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20년간 동맹 관계를 이어왔던 르노와 닛산이 동맹 파기를 선언할 수 있다는 극단적 전망까지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곤 회장이 일본에서 체포되기 직전까지 르노와 닛산의 합병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닛산 이사회 구성원들은 곤 회장 주도하에 합병 절차가 수개월 내에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일본인 임원들은 합병 이후 르노 대주주인 프랑스 정부가 경영에 개입할 것을 우려해 반발했다. 이 시기 곤 회장과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최고경영자(CEO) 간 갈등도 깊어졌다고 한다.

곤 회장은 연봉 축소 기재, 투자자금 횡령, 회사경비 부정 지출 등 크게 세 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일본 언론은 곤 회장이 당초 알려진 50억엔에 추가로 30억엔을 더 축소 기재했다고 보도하는 등 연일 추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곤 회장 수사는 그렉 켈리 닛산 대표이사 밑에서 일하던 간부 2명의 자백으로 급물살을 탔다. 이들이 도쿄지검과의 사법 거래에 합의하면서 곤 회장 체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프랑스 르노그룹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곤 회장을 대신해 필리프 라가예트 이사회 의장을 임시 회장으로, 티에리 볼로레 르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임시 CEO로 임명했다. 다만 르노 측은 곤 회장이 복귀할 때까지 회사 경영을 맡는다고 밝혔다. 곤 회장 해임은 관련 의혹의 사실 여부를 지켜본 다음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르노 이사회가 프랑스 정부의 압력으로 곤 회장 해임을 포기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반해 닛산 측은 22일 예정된 이사회에서 곤 회장 해임안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곤 회장의 체포와 이에 따른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와해 우려가 고조되자 르노와 닛산은 각국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하고 신용등급도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자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과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이 긴급 전화통화를 한 뒤 “양국 정부는 르노와 닛산 간 동맹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르노 역시 입장문을 내고 “닛산, 미쓰비시와의 전략적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곤 회장 실각 이후 20년 가까이 이어져온 르노와 닛산의 제휴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1999년 경영난을 겪고 있던 닛산은 르노의 지분 인수로 간신히 회생 기회를 얻었다. 르노가 임명한 곤 회장은 비용절감 등 과감한 경영 기법으로 닛산 부활을 이끌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닛산은 기술력과 생산성 측면에서 르노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현재로선 르노와 닛산이 장기간 협력해 왔기 때문에 이혼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르노와 닛산은 명목상 경영이 분리돼 있지만 연구개발과 생산, 판매망 등을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다. 르노와 닛산이 생산하는 차량은 브랜드와 디자인만 다를 뿐 플랫폼(차량 뼈대와 엔진, 변속기 등)은 동일하다. 이를 통해 비용절감은 물론 글로벌 시장의 다양한 수요에도 대응 가능하다. 전기차 등 신기술 개발도 르노와 닛산 협력 체제하에서 이뤄져왔다. 자동차 판매량 세계 2위를 기록 중인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불화로 재편될 경우 제휴에 따른 시너지 효과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