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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에게 묻다] ‘공포의 HPV’ 편도암 주범… 남성 발병률 3배 높아

서울성모병원 암병원 두경부암센터 선동일 교수팀이 편도암 수술을 하고 있다. 편도암은 장기간 잦은 흡연과 과도한 음주뿐만 아니라 성적 접촉에 의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주목받는 암이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선동일 서울성모병원 교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선동일(사진) 교수는 두경부암 진단 및 치료 전문가다. 두경부암이란 입과 목 부위에 생기는 11종의 암을 통칭하는 용어다. 갑상선암과 후두암 설암(혀암) 구강암 타액선(침샘)암 인두암 편도선암 코암 구순(입술)암 등이 대표적이다.

선 교수는 1987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2003년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이비인후과 교환교수를 지내고, 가톨릭의대 이비인후과학교실 주임교수와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장을 역임했다. 현재 암병원 두경부암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두경부암의 진단과 수술 뿐 아니라 음성장애클리닉과 연하장애클리닉도 운영 중이다. 두경부암 환자들이 암 절제수술 후 흔히 겪는 음성 및 연하장애(삼킴장애)를 잘 극복, 수술 전 삶의 질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선 교수는 지금까지 SCI급 국제 학술지에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2014년, 갑상선암 수술 후 겪기 쉬운 음성변화를 사전에 예측,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논문을 국제 학술지 ‘티로이드(Thyroid)’에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갑상선암과 두경부암 수술법들을 총정리, 소개한 책 ‘갑상선·두경부외과학’도 펴냈다.

선 교수는 요즘 월평균 5∼6명의 두경부암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대부분 수술에 10∼12시간이 걸리는 설암과 편도암, 후두암 환자들이다. 기관의 특성상 암 절제수술과 동시에 기능복원을 위해 재건성형수술까지 해줘야 한다.

선 교수에게 최근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여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편도암을 극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음주·흡연보다 바이러스 영향 커져

편도암은 구강 내 목젖 양측에 위치한 구개(입천장)편도에 발생하는 암이다. 경부 임파절로 전이가 이뤄진 뒤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편도암은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 여부에 따라 HPV 양성과 음성 편도암으로 나뉜다. HPV 감염이 장기간 잦은 흡연, 과도한 음주와 더불어 편도암 발생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음주·흡연에 의한 HPV 음성 편도암은 1988년과 2004년 사이 50%가 감소했다. 반면 HPV 양성 편도암은 1980년대 말 20%에서 2014년 이후 70% 수준까지 급증했다. 과도한 음주·흡연을 자제하는 사회 분위기가 갈수록 확대된 영향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선 교수 연구팀이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성모병원에서 편도암 치료를 받은 환자 23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니 HPV 감염률이 무려 65.5%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선 교수는 “HPV 양성 편도암 환자의 경우 음성 편도암 환자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3∼5세 정도 젊고, 남자가 3배 가량 많으며 성생활과 관련성이 높은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목, 귀 부분이 아플 때 조심

편도암의 주된 증상은 목이 아픈 증상이다. 경우에 따라 귀 통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열은 없다.

통증은 혹 부위에 궤양이나 염증이 생겼을 때, 주위 신경을 침범했을 때만 발생한다. 음식물을 삼킬 때 목이 아프고, 귀로 뻗치는 듯이 아픈 연관통이 나타나기도 한다.

좀 더 진행하면 삼킴 장애 이물감 구강출혈 귀 통증 등과 함께 목에서 혹이 만져지기도 한다. 암세포가 아래턱뼈 쪽으로 옮겨 붙거나 익상근(날개근육)으로 파고들면 턱을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 혹이 기도를 압박할 정도로 크게 자라면 숨이 차고, 숨 쉴 때(특히 숨을 들이쉴 때) 잡음이 들리기도 한다.

선 교수는 “입 안에 궤양이 생겼는데 잘 낫지 않고, 목에 통증이 있거나 삼키는 것이 곤란하고, 목에서 무슨 덩어리 같은 것이 만져지거나 3주 이상 목이 계속 부어있을 때는 반드시 이비인후과를 찾아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술 시 음성·삼킴장애 최소화 중요

편도암은 치료 시 외모 변화를 막고 입과 목에 위치한 각 기관의 고유기능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HPV 양성 편도암의 경우 가급적 수술을 피하고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우선적으로 시도하는 이유다.

편도암도 초기에 발견, 제때 수술하면 절제범위를 최소화해 재건수술 없이도 기능 보존이 가능하다. 선 교수는 이 경우 현미경을 이용한 레이저 절제술이나 로봇을 이용한 기능 보존수술로 음성 및 삼킴 장애가 일어나지 않게 해주고 있다.

광범위 절제수술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경구강 로봇수술, 경구강 레이저 미세수술, 유리피판을 이용한 음성 및 삼킴 기능 재건수술과 보존적 후두수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다.

다행히 편도는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는 갑상선과 달리 수술 후 합병증이 미미하다. 면역상 문제도 없다. 다만 치료 후에도 미세 암이 남아 있거나 잠재적 전이 가능성 때문에 마음을 놓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편도 부위는 해부학적으로 림프절이 많이 발달돼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편도암 환자의 60∼70%가 경부림프절에 전이된 상태로 발견될 정도다.

표적치료제 개발 활기

의학계는 HPV 감염 여부가 편도암 발병위험을 가늠하는 중요한 예측 인자로 떠오르면서 HPV 박멸을 타깃으로 한 항바이러스제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첫 번째 열매는 2000년 처음 선보인 표적치료제 ‘얼비툭스(erbitux)’와 ‘게피티니브(gefitinib)’다. 현재 두 약을 HPV 양성 편도암 치료제로 산업화하기 위한 임상시험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예방백신 개발은 아직 안개 속이다. 같은 종류의 바이러스이고, 감염경로도 비슷한데도 자궁경부암 백신은 편도암 예방 쪽에선 맥을 못 춘다.

따라서 현재로선 편도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금연을 실천하고 과도한 음주를 삼가는 것과 더불어 여러 파트너와 관계를 갖지 않는 등 건전한 성생활을 하는 수밖에 없다. HPV가 주로 구강성교 등 성적 접촉에 의해 전파되는 탓이다.

선 교수는 “2020년 쯤에는 HPV 양성 편도암 발생률이 HPV 양성 자궁경부암 발생률을 추월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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