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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할 수 없는 친구와 나눈 특별한 우정… 전신마비 장애인 윤석언씨·박수민 폴란드 선교사

윤석언씨가 미국 메릴랜드주 컬럼비아시의 요양원 인근에서 전동 휠체어를 탄 채 이동하고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윤씨와 이메일로 소통해 온 박수민 선교사. 윤씨가 병상에서 모니터를 보며 작업하는 모습(왼쪽부터). 윤석언씨, 박수민 선교사 제공
 
윤씨가 병상에서 모니터를 보며 작업하는 모습. 윤석언씨 제공


13일 오후. 모니터 상단 이메일 제목에 시선이 꽂혔다. ‘기자님, 윤석언입니다’. 언제 받아볼 수 있을지 몰라 기약 없이 기다리던 메일이었다. 짧은 인사말과 함께 사전에 보낸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어졌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부터 확인하기 위해 화면을 내렸다.

‘보내드린 질문에 답변을 적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소요됐나요?’

‘12시간이 넘게 걸린 것 같네요^^’

메일이 발송된 곳은 미국 메릴랜드주의 한 병상이다. 윤석언(49)씨는 1991년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27년째 목 아래가 마비된 채 살고 있는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명산을 찾아 자일(등산용 밧줄)에 몸을 맡기며 암벽등반을 즐기던 청년은 하루아침에 삶 전체를 타인의 손에 맡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차 없는 청년들을 태워 교회로 향하는 길이었어요. 대형 트럭이 제가 진입하려던 차선으로 들어와 충돌하면서 차 밖으로 튕겨 나갔죠. 뇌출혈과 중추신경 손상으로 혼수상태가 지속됐고 병원에선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지만 40일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습니다.”

윤씨는 24시간을 누운 자세로 보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어 먹는 것도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키보드를 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신 눈으로 글자를 입력한다. 특수 스티커가 부착된 안경을 쓰고 커서를 움직여 모니터상의 원하는 문자에 1초 동안 정지시켜 두면 해당 문자가 입력된다.

“처음엔 ‘ㅇ,ㅏ,ㄴ,ㄴ,ㅕ,ㅇ,ㅎ,ㅏ,ㅅ,ㅔ,ㅇ,ㅛ’를 입력하는 데만 2∼3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비장애인에 비해 100배 정도 느린 ‘왕초보’ 수준인 셈이죠.”

혼수상태를 깨뜨린 회복을 넘는 두 번째 기적이 찾아오진 않았다. ‘그만 하나님의 품으로 데려가 달라’는 호소가 끊이지 않을 만큼 극심한 고통 때문에 눈 뜨는 게 두려운 나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기도가 다른 이들에게 들리도록 길을 냈다. 그리고 그 일에 필요한 사람들을 윤씨 곁으로 보냈다. 그중 하나가 동갑내기 박수민 선교사다.

“2015년 7월 월드미션신학대 온라인 강의를 듣는데 한 학우가 ‘우리 친구 할래요?’라며 말을 걸어왔어요. 박 선교사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로또 같은 친구와의 인연이 시작된 순간이었죠.”

박 선교사는 1998년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나 무역회사에서 일하면서 주말엔 현지 청년들에게 전도활동을 펼치는 평신도 선교사다. 운명적 만남은 대서양과 5∼6시간의 시차를 넘어 2년여간 2000회에 달하는 ‘이메일 교제’로 이어졌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두 사람 사이엔 유년시절 추억, 함께 신학을 공부하는 동반자로서의 격려, 긴박한 선교현장에서의 기도제목, 유언처럼 쏟아낸 삶의 고백 등이 켜켜이 쌓였다.

윤씨의 삶과 두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은 지난달 책 ‘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포이에마)로 출간되기도 했다. 하나님이 계획한 생의 이야기들을 세상에 전하고 이를 선교와 구제에 활용해 보자는 약속을 함께 지켜낸 것이다. 박 선교사는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석언이는 침대 위에서 하나님과 동역하는 ‘침상 선교사’이고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메가폰”이라고 자랑했다.
 


미국과 폴란드에서 도착한 메일은 두 사람이 꿈꾸는 하나의 소망으로 사이좋게 끝을 맺었다. ‘오늘 하루가 하나님께서 예비한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일을 기대하며 친구와 하늘 동행을 이어갈 겁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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