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건강

[And 건강] 학원시간 쫓겨 ‘주독야식’… 우리 아이 속 탄다


 
식사시간이 늦거나 공부하며 밤참을 자주 먹는 아이들에게서 역류성 식도염 발생이 늘고 있다.
 
식도와 위 경계 부위 괄약근이 정상 작동할 때(왼쪽)와 느슨해져 내용물이 역류할 때의 위 내부.






▨ ‘역류성 식도염’ 증상
가슴 쓰리거나 명치 통증·입냄새
잔 기침·쉰 목소리 잦으면 의심

▨ 0∼19세 3400여명 14년간 추적
10명 중 3명 타는 듯한 가슴 고통
유병률 7년새 3.2배나 늘어

▨ 환아 늘어나는 원인
늦은 식사나 야식 후 바로 수면
학교·사춘기 스트레스도 한몫
강남3구 유병률 상대적으로 높아

▨ 증상 악화 막으려면
위산 분비 억제 약물로 치료 가능
식생활 습관도 반드시 고쳐야


아이들이 어른들의 병을 닮아가고 있다. 밤참을 자주 먹거나 음주 흡연 과식을 많이 하는 성인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위-식도 역류병’이 소아·청소년들에게도 늘고 있다. 학업 스트레스와 나쁜 식습관, 서구화된 식사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와 식도 사이에는 괄약근이 있다. 위로 넘어간 음식물이 식도로 다시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주는 조임쇠 역할을 한다. 여러 원인(구조적·후천적 요인)으로 이 괄약근이 느슨해지면 음식물이나 위산, 소화효소 등이 거꾸로 식도 쪽으로 올라가는 증상이 생긴다. 역류가 반복되면 궤양이나 염증이 생겨 역류성 식도염으로 진행된다.

불타는 듯한 가슴 쓰림(heart burn), 명치(오목가슴) 끝에 심한 통증, 신물이 넘어오는 듯한 느낌, 메스꺼움, 쉰 목소리, 야간 기침, 입냄새 등이 주요 증상이다. 가슴 쓰림은 주로 밤에 심해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 물이라도 마셔야 할 정도로 고통이 심하다.

국내 위-식도 역류병 환자는 2016년 기준 416만여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280만명가량이 식도염을 동반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분 40∼60대다.

최근에는 소아·청소년에서도 위-식도 역류병이 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최연호 교수팀은 경북대병원과 함께 2001∼2014년 내시경 검사를 받은 0∼만 19세 3413명을 대상으로 14년간 역류성 식도염 유병 경향과 위험 요인을 연구해 대한소아소화기영양학회 영문 학술지 최신호에 발표했다. 그간 아동의 일부 연령에 국한해 비슷한 연구가 있어 왔지만 청소년까지 아우르는 장기 추적 연구 결과가 나오기는 처음이다.

14년간 역류성 식도염 유병률은 28.7%(3413명 가운데 978명)로 집계됐다. 아이들 10명 가운데 3명 정도가 타는 듯한 가슴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유병률은 2001∼2007년 11.8%에서 2008∼2014년 37.7%로 3.2배 증가했다. 역류성 식도염을 진단받은 환아들의 평균 연령은 12.5세였다.

강북삼성병원 소아청소년과 심정연 교수는 19일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에서 역류성 식도염이 늘고 있는 추세이며 중학생들이 특히 많이 병원을 찾는다”면서 “새로운 학교 환경에 어려움을 많이 겪을 뿐 아니라 사춘기여서 부모 선생님 친구와의 갈등 등 스트레스 상황이 심한 연령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늦은 식사나 잦은 야식, 식사 후 짧은 시간 내 잠자리에 드는 생활습관 등도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심 교수는 “학원 갔다가 늦게 와서 배고프니까 야식을 먹고 좀 있다 바로 취침하는 아이들이 많다”면서 “밤에 위장관도 쉬어야 하는데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려면 위산을 분비해야 하고 위산은 누운 상태에서 거꾸로 식도로 들어가 산에 취약한 식도 점막에 염증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나 튀김 같은 음식은 소화되기까지 보통 4∼5시간이 걸린다. 이런 식생활이 반복되면 역류성 식도염이 오고 3∼4주 약물 치료를 받아 낫더라도 식습관 때문에 재발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번 연구에서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 거주하는 아이들의 역류성 식도염 유병률이 그 외 지역 거주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점도 눈에 띈다. 연구진은 “강남에 사는 아이들의 경우 스트레스가 많은 교육 환경에 처해 있고, 위액 분비를 촉진하는 패스트푸드 등 서구화된 음식점이 많은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분당차병원 소아청소년과 정수진 교수는 3∼6세 미취학 아동 202명(역류성 식도염 진단 85명, 건강 아동 117명)을 대상으로 식습관과 역류성 식도염의 상관성을 밝힌 연구 논문을 대한소아과학회지에 게재했다.

연구 결과 역류성 식도염 아동 55.3%(47명)가 평소 잠들기 3시간 전에 음식물을 자주 섭취한 사실을 확인했다. 역류성 식도염이 없는 정상 아동은 37.6%(44명)만이 이런 식습관을 갖고 있었다. 역류성 식도염 아이들은 하루 세 끼를 규칙적으로 먹지 않고 저녁 때 몰아서 많이 먹거나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경향이 높았다. 또 잦은 간식과 편식,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는 아이들에게서 많이 발병했다.

정 교수는 “미취학 아동이 평균적으로 잠자는 시간은 밤 10시인 점을 고려했을 때 7시 이후에는 될 수 있는 한 식사나 간식을 먹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임이나 채팅을 하느라 밤늦게까지 자지 않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공복 상태가 6시간을 넘으면 가슴쓰림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럴 땐 우유를 마시거나 과일 등 금방 소화되는 음식을 먹고 자면 괜찮아진다.

역류성 식도염에 걸린 아이들은 주로 자려고 누웠을 때 가슴이 쓰리고 답답하다거나 배가 아프다고 자주 호소한다. 자기 의사 표현이 정확하지 않은 더 어린 아이들은 밥을 먹지 않는 등 전혀 예상치 못한 증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어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밤에 잔기침을 하거나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쉰 목소리를 계속 낸다면 역류성 식도염을 한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영아들의 경우 식도로 역류된 내용물이 기도로 들어가 흡입성 폐렴을 유발하기도 하며 만성화되면 빈혈이나 성장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심 교수는 “어른들의 경우 가슴 통증이 있다면 심근경색에 의한 증상일 수도 있겠으나 아이들은 심근경색이 드문 만큼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고 하면 역류성 식도염이 아닌지 체크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아의 역류성 식도염 치료는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PPI)로 이뤄지며 역류 자체를 근본적으로 막는 수술은 권장되지 않는다. 식생활 습관 교정이 반드시 따라줘야 한다.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는 게 좋다. 야식·과식도 삼가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건너뛰지 않도록 부모의 배려와 계도가 필요하다.

저녁 먹고 학원 가기, 돌아와서 간단히 간식 먹기(고기나 패스트푸드는 피함), 저녁 일찍 먹기(최소 취침 4시간 전), 카페인 음료 피하기 등도 실천하도록 한다. 식사는 천천히 하고 식후 30분간은 눕거나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대신 산책이나 앉아서 쉬기를 권장한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