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배우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5·끝>] 생계 문제까지도 하나님 의지하고 ‘일용할 양식…’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의 작품 ‘세례 요한의 설교’. 독일 베를린 국립회화관 소장
 
독일 라이프치히에는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의 파우스트와 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의 동상이 있다. 박양규 목사 제공
 
독일 바이마르의 괴테 박물관에 전시된 괴테의 초상화. 박양규 목사 제공
 
박양규 목사


제125문 : 네 번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입니다. 이는 우리 육신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만이 모든 좋은 것의 원천이시고, 그분의 축복 없이는 우리의 염려와 애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사까지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제126문 : 다섯 번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비참한 죄인인 우리가 짓는 죄와 우리에게 만연한 악으로 인해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말아달라는 간구입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 이웃을 마음 다해 용서하기로 작정하는 것이 우리 안에 임한 은혜의 증거로 드러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제128문 : 이 기도의 마무리는 어떻게 합니까?

: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왕으로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셨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모든 선한 것을 주기 원하시며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이 기도를 드린다는 고백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영원히 영광을 받아야 하기에 이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일용할 양식과 하나님 나라

예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예수의 기도와 당시 그리스 종교에서 말하는 기도가 대비된다. 이방인들이 생계를 위해 신전에서 간구했던 것과 달리 예수께서는 하나님 면전에서의 삶을 강조하는 ‘코람데오’로서의 기도를 강조하셨다. 이것이 주기도문의 전반부 내용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주기도문 후반부 첫머리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한다. 그리스도인의 생계를 위한 기도는 어떻게 달라야 할까.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1606∼1669)의 그림 ‘세례 요한의 설교’를 통해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렘브란트는 그림에서 열심히 설교하는 세례 요한을 밝게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세례 요한 주변에서 말씀을 듣는 청중의 표정은 전혀 설교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고, 어두운 곳에 배치된 사람들은 말씀에 등을 돌린 채 자신의 길을 향해 가고 있다. 렘브란트 그림을 보면 빛에 노출된 부분은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면을, 어두운 부분은 내면의 세계를 반영하곤 한다. ‘갈릴리 호수의 풍랑’, ‘돌아온 탕자’ 같은 작품에서 실감나게 반영했던 것처럼, 이 그림도 마찬가지다.

세례 요한 주변에서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표정에 근심이 가득한 것은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하다. 예배와 같은 종교적 행위가 일상이 되어 있지만, 오늘날 크리스천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먹고사는 생계와 관련된 근심이다. 예배 시간에는 누구보다 먼저 ‘아멘’을 외치며 열광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교회 밖에서는 생계 문제를 고민하며 세상적인 방법을 추구하며 말씀과 상관없이 살아간다. 세례 요한을 무색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일용할 양식을 위한 간구’는 무엇일까.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하고 있지만 내면으로는 세상에서 해결해 보려는 이원론적 모습이 아니다.

삶의 모든 부분, 즉 생계 문제까지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심을 믿고 의지하라는 가르침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먹고 잘 사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그들에게 의존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것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고 하신다(마 6:24).

‘파우스트’와 실존의 문제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의 대표작 ‘파우스트’는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와 악마 메피스토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을 다룬 작품이다. 마치 욥기에서 욥을 두고 하나님과 마귀가 내기를 했던 것처럼 메피스토가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설정이 작품의 주요 모티브다. 그중 파우스트가 실존의 문제 앞에 절규하는 부분은 어쩌면 우리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나는 아침마다 눈을 뜨며, 공포만을 느낀다. 오늘 해가 지기까지 한 가지 소원조차 이룰 수 없고, 모든 쾌락의 암시까지도 고집 센 세인들의 왈가왈부로 부서지고, 나는 발랄한 가슴의 창조 작업도 온갖 추악한 세상 일로 방해받을 것을 생각하면 나는 씁쓰레한 눈물을 흘리며 울고 싶어진다.

그리고 밤이 내려 깔려도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누워야만 하며, 잠자리에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고 사나운 꿈에 놀라게 마련이다. 내 가슴속에 살고 있는 신은 나의 가장 깊은 마음의 밑바닥까지 뒤흔들어 놓을 수 있지만 나의 온갖 힘 위에 군림하는 신은 외부로 향해선 아무것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에겐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되고, 죽음만이 바람직하고 삶이란 그저 밉기만 하다.’<파우스트(누멘) 1549∼1571행>

파우스트의 절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작가 괴테가 인간의 실존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우리 대부분이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실존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군림하는 신은 아무것도 움직일 수가 없다’는 고백처럼 일용할 양식의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관여하고 있지 않는 듯한 절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래서 괴테는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지만 결국 그의 손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들어가는 설정을 하는데, ‘타인을 위한 삶’이 구원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설정하고 있다. ‘파우스트’의 결론은 루터가 주장했던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괴테는 이단적인 사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한국교회에 던지는 괴테의 충고

종교개혁은 독일에서 루터에 의해 시작됐다. 괴테는 루터보다 200년 후에 활동한 독일인이다. 과연 괴테는 루터의 사상을 몰랐을까. 괴테와 실러에 의해 일어난 ‘질풍노도문학’은 기독교가 지배하는 엄격한 사회, 그러나 생명력 없이 고착화된 당시 교회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문학사조다.

교회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구원의 요소로 삼지만, 예수님의 사랑과 생명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다. 종교전쟁이 사회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극심한 빈부격차와 사회 부조리는 하나님 나라의 자취를 숨겨 버렸다.

마을 곳곳마다 높이 솟은 교회의 첨탑은 그 위용을 드러내지만 이름 없이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절규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마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알베르트처럼 모든 것을 기독교 교리의 잣대로 평가하는 교회는 존재하지만, 사랑으로 감싸주는 교회는 없었다.

괴테의 주장은 어쩌면 우리가 새겨야 할 내용이다. 저출산이 심각해지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실존의 문제가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은 압도적인 1위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큰 교회들을 보유한 국가이기도 하다.

교회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부르짖으며 ‘진리’를 외치고 있지만 예수의 모습을 닮고 생명력을 발휘하는 교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가 교회에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외쳐야 할까, 아니면 ‘타인을 위한 삶’을 외쳐야 할까. 사랑이 전제될 때, 진리가 비로소 열리게 된다는 것이 괴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 나눔과 적용을 위해 생각해 볼 것은?

☞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 괴테가 말하는 ‘타인을 위한 삶’을 교회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할까요?

글=박양규 목사
△서울 삼일교회 교육디렉터 △청소년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2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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